▲ 권 성 길 목사

우리는 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우면 어머니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던 일들을 기억한다.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에 들었다. 너는 어느날 어머님의 자장가 소리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려는데, 자장가 소리가 점점 멎더니 노래 대신 어머니의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리기 시작했다. 자장가를 듣던 저보다 자장가를 부르던 어머니가 먼저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딸을 재우려다가 먼저 잠들어버린 어머니의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는 자장가보다 더 평화롭고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 품속에서 깊이 잠들었다. 어머니의 숨소리는 한마디로 생명의 소리였다. 평화의 소리였다. 행복의 소리였다. 이 어머니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 어머니는 생명을 이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다. 어머니는 가정의 평화를 가져다가 주었다. 나의 행복도 가져다가 주었다.

자장가를 불러 주다가 아기보다 먼저 잠들어 버린 어머니처럼, 우리도 상처받고, 방황하는 친구를 위로해 주다가 정작 자신이 먼저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위험에 처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다가 오히려 자신이 더 용기를 얻을 때가 있고, 힘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다가 자신의 마음이 먼저 행복해지는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상처받고 방황하는 이웃을 통해 위로받고, 구원받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사람을 통해 구원받고, 평화를 얻는다. 이것은 성서의 진리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이다. 우체통에 편지 대신 어렵게 모은 돈 봉투를 넣는 손길...... 그 마음에는 몇 배의 행복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이웃에게 돌아간다. 사랑은 아무리 외쳐도 지나치지 않다.
우체통에 넣은 돈 봉투에는 이런 글이 써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주세요."

어려운 이웃을 통해서 우리는 배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이웃과 함께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사는 세상이다. 하나님 나라도 혼자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남한 민족만 가는 곳이 아니다. 남북한 민족, 아니 세게민족이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어느 현자는 말했다. “스승도 제자에게서 배우는게 있다”고 했다. 험한 길 잘 건너라고 손을 잡아 주면서, 스승도 덩달아 힘이 나서 험한 길을 같이 무사히 헤쳐 나간다.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주는 사람은 더 행복하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한 인정공동체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 때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인정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는 반이민 정책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혼자 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 혼자 가겠다는 속셈이다. 이런 곳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없다. 그렇다. 삭막한 세상에서 인류가 함께 사는 것이,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그래서 오늘 목요일 교인들을 향해 고난당하는 이웃을 통해 구원을 받자고 외쳐본다. 그리고 인생의 마술을 부려보자고 제안한다.

새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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