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강석 목사.

목요일 점심, 서울의 한 식당에서 호산나선교회 임원회 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항간에 어떤 사람이 호산나선교회와 저를 폄훼하고 왜곡된 글을 써서 퍼 날랐는데, 나라를 염려하는 보수의 한 무명 논객이 썼다 생각하고 일절 대응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심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특별히 그 자리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하셨던 정남식 박사님도 함께 자리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심장에 관한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권위자라고 합니다.

정 박사님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원장을 하시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후 서초동에 필메디스의원이라는 심장전문병원을 오픈하셨습니다. 제가 3년 전에 주일날 갑자기 심장이 쪼여 와서 급하게 병원에 간적이 있잖아요. 가서 CT를 찍어보니까 심장으로 연결된 세 개의 관상동맥 중에 두개의 혈관이 하나는 50%, 또 하나는 70%가 막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튿날 심장 조형술을 해 보니까 스탠트를 박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특별한 이상 증세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시 한 번 정밀 조사를 해봤더니 무리를 하면 혈관 경련이나 경미한 협심증증세가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바빠서 병원에 못 갔는데, 그 날 아침에 일찍 정남식 박사님께 특별진료를 받으러 간 것입니다.

저는 3시간에 걸쳐서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심장은 튼튼하였습니다. 다만 동맥혈관에 칼슘이 약간 끼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정 원장님께서 운동검사를 하는 곳까지 오셔서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산나선교회 임원들이 모인 곳까지 오셔서 식사 하는 자리까지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 곳에서 건강과 심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그랬더니 박종구 목사님께서 “왜 이렇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만 하느냐, 우리가 삶에 대한이야기를 하자.”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동의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창가에 보이는 가로수를 보십시오. 저 공원에 보이는 포플러나무나플라타너스 나무를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서 함께 식사를 할 뿐만 아니라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저 나무와 잎사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가수 배호는 ‘마지막 잎새’라는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였지만 우리는 다 중년을 넘겼지 않습니까? 저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십시오. 얼마나 가슴이 시리도록 푸릅니까? 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푸른 나뭇잎과 풀잎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심장이 우리 안에 뛰고 허파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랬더니 박종구 목사님이 한 술 더 떠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낭송하시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지금까지 숨차게 달려온 소강석 목사, 당신이 그렇게 아름답소.)” 식사를 마치고 김찬호 장로님 장인 어르신인 최기주 장로님이 소천을 하셔서 밀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 안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대한민국 심장 최고의 권위자인 정남식 박사님으로부터 진료를 받는 것도 감사하거니와, 여기까지 살게 하시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심장을 뛰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심장을 향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만큼 젊은 날부터 애끓는 삶을 살아온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20대에는 백암교회를 개
척하고 새에덴교회를 개척 하느라 가슴을 조였고, 30~40대에는 우리 교회부흥과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가슴을 애태웠죠. 또 40대 중반부터는 한국교회 연합과 생태계 회복을 위하여 애
를 끓였습니다.

소쩍새가 우는 밤에 저도 긴긴밤을 함께 애를 태웠지요. 그렇게 애태운 나날들이 연속되었는데 저의 심장이 이토록 뛰어주었고 지금도 지치지 않고 뛰어주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심장과 함께 하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 심장! 여태까지 쉬지 않고 뛰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부디,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힘들더라도 뛰고 뛰어주기를 부탁해요.” 그러면서 저는 차안에서 글을 쓰고 원고를 교정하며 밀양까지 갔습니다.

새에덴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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