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교단이 결의한 목회세습 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해 해마다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공방이 거대한 몸짓 키우기에 골몰하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져간 공룡의 최후를 보는 듯하다.

통합측 총회 재판국은 지난 5일 자정 무렵 명성교회 세습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을 수 개월 질질 끌다 내린 결론이다. 그 앞서 총회 수습전권위가 이 문제로 인해 사고노회가 되버린 서울동남노회 수습노회를 소집해 친명성측 임원들을 세우고 임무를 종결한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이제 이 뜨거운 감자는 또다시 9월 총회로 넘어가게 됐다. 지난해 예장통합은 재판국이 세습을 용인하는 판결을 내리자 총회 석상에서 이를 뒤엎고 새로 재판국을 구성했다. 그 재판국이 이번에는 세습이 잘못됐다며 원심을 파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총회 재판국이 최종 판결한 것을 총회 석상에서 뒤집은 지난해 사례는 이번 재심 재판국이 내린 결정도 얼마든지 총회에서 뒤집으면 된다는 일종의 거부 신드롬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번 판결 직후 명성교회측 관계자는 “재심도 하는데 재재재심은 못하겠느냐”는 말로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명성교회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전적인 책임은 통합 교단에 있다. 교단은 개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고 지원하는데 그 사명이 있다. 노회도 마찬가지다. 총회가 해마다 개교회에서 거두어가는 상회비, 선교비, 후원금 등은 소속에 대한 일종의 의무분담금이기도 하거니와 총회가 큰 울타리 안에 개교회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그 대가 성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통합 총회는 덩치에 비해 개교회를 지도 관리 보호하는 측면에서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교회 분규가 일어나도 마치 공무원처럼 행동한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 살아남는 놈만 키우는 것은 정글의 법칙이지 예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 교단은 명성교회 문제를 마치 무 자르듯 하기 전에 교회와 소통하며 교회도 살고 총회도 사는 길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은 숙고를 했어야 했다.

세습금지법은 교회의 본질에 속한 문제가 아니다. 작은 교회는 되고 큰 교회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본질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면 마땅히 교단과 교회가 상생하는 해법을 찾았어야 했다. 교단의 위신이 이토록 추락하기 전에 말이다. 그런데 장자교단이라 자부하는 통합 총회는 이 중차대한 문제를 총대 1500명의 당석에서의 결정에 송두리째 맡겨버렸다. 그러고 나서 결의를 지키지 않으면 마치 신앙에서 이탈한 범법자, 이단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개척 1세대들이 하나 둘 은퇴하는 시기가 되면서 특히 대형교회들은 후임자를 교체하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았음은 그간 숱한 교회분규 사례가 잘 말해준다. 오랜 분규로 교회와 교인들이 큰 상처를 입고 갈리는 과정에서 전도의 문이 막히고, 한국교회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마당에 교단이 이를 단지 개교회 문제로 국한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복지부동’ 한다면 앞으로 교단 무용론과 해체 현상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세습은 성직 매매다. 이를 용인하면 한국교회는 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교회와 목사직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교계 현실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함부로 내뱉을 말은 아닌 것 같다. 교회가 흥하고 망하고의 판단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일이지 내 가치기준이 진리인양 주장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교회가 정말 망한다면 하나님 대신 돈 명예 권력을, 예수 십자가 대신 자기 신념과 철학을 믿는 우상 숭배가 아니고 단지 목회세습 때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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