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호국 보훈의 달! 6월이 되면 활기를 넘어 분주 분망해지는 곳이 현충원이다. 잊고 살다가 6월에라도 돌아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생명을 기울여 받쳐서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 보기를 원했던 순국선열들의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린다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책무일 것이다.

6월 25일을 어찌 잊겠는가? 어떤 얼빠진 사람은 남에서 저지른 북침이라고 혹은 통일을 위한 통일전쟁이었다는 궤변으로 호도하려는 사람도 있다지만 어이없는 망언으로 일축해도 해 될 것이 없을 것이다. 희생된 40만의 피가 이 땅의 산하에 흐르고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1956년 어느 정도의 안정을 얻었을 즈음에 대통령령으로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였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지켜낸 순국선열들, 그리고 전몰장병들과 경찰들을 어찌 잊으랴! 온 나라 온 국민이 기려야 마땅하다. 옷깃을 여미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면서 그래도 이 나라에 소망 있음을 느끼며 함께 즐겁다. 현충원 못지않게 모든 사람들이 돌아보고 살펴야하는 곳이 있으니 양화진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공식 명칭이다. 현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5-8’, 1893년 10월24일에 개설 허가를 받아서 13,224 제곱미터에 조성된 제3의 현충원인 셈이다. 무덤은 417 여기가 있으며, 최초의 피장 선교사 존 헤론을 포함해서 145명(가족포함)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초대 선교사와 조국 근대화에 헌신한 구미 각국의 저명인사 들이 돌보는 이 없이 외롭게 묻혀있는 것이다.

1885년 4월 부활절에 재물 포항에 첫발을 딛고 어둠의 땅 조선에 최초로 들어 온 언더우드 선교사의 뒤를 이은 선교사들이 이 땅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다. 현충일을 지내면서 왜 양화진을 생각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차별이 없고, 또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분위기이다.

그런데 왜 양화진은 현충일에도 조용해야 하는가? 찾아가 살피고 헌화하는 그 일마저 우리 정부는 인색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 하는 말이다. 그분들은 대통령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꽃 한 다발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이 근대화를 거쳐서 높은 국격을 자랑하고 세계열방의 선두에 설 수 있게 된 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예수 기적이고, 복음의 기적이라 해야 옳다.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역사는 왜곡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문 성경이 아닌 한글성경이 번역되면서 언문이 민중의 글이 되고 백성들의 눈과 입이 열리지 않았던가? 오늘의 세브란스를 비롯해서 세계적인 병원으로, 대학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그 뿌리를 한강에서 찾아야 하는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나에게 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한국에 받치리라’고 말한 그분들의 한국 사랑을 행여 잊지는 말자. 양화진을 기억하자!

개혁총회 전 총회장·본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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