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이다. 본문에는 흑암(ךשׁח) 외에 두 가지 다른 표현이 더 나온다. 곧 ‘더듬을만한 흑암’(ךשׁחo שׁמי)과 ‘캄캄한 흑암’(הלפא-ךשׁח)이다. 세 차례 모두 ‘흑암’은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자 흑암이 이집트 땅을 사흘 동안 뒤덮어 서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몰 후 집안으로 모여드는 것은 밤의 어둠이 두려움과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레 닥친 흑암 앞에 이집트는 일순간 공포에 휩싸인다. 더듬거리며 확인해야 한다면 필경 시력을 상실했거나 극도의 불안과 절망의 상태일 것이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창조 이전의 ‘혼돈과 공허’를 경험한 바 없겠지만 본문의 흑암은 창조 이전의 혼란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아모스에게 빛이 없는 흑암은 심판의 날, 곧 ‘야웨의 날’이다(암 5:18-20). 여덟 차례 재앙이 바로와 이집트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면 아홉 번째 흑암은 바로의 존재와 이집트의 기반을 무기력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흘 동안 이어진 ‘캄캄한 흑암’은 결국 이집트가 섬기는 신 태양을 불능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기에 바로는 ‘너희는 가서 야웨를 섬기라’며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길을 열어준다(24절).

‘캄캄한 흑암’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다. <70인역>은 흑암을 ‘회오리 바람,’ 또는 ‘허리케인’으로, <불가타>는 ‘소름끼치는, 무서운’ 등을 뜻하는 호리빌레(horribiles)로 읽는다. 신명기는 ‘캄캄한 흑암’을 ‘어둠과 구름과 흑암,’ ‘불, 구름, 흑암’(4:11; 5:22)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통일된 용어는 없이 사용되었다. 해마다 3월이면 캄신(khamsin)이라 불리는 모래 폭풍이 3-4일 정도 지속된다.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40 〫C 이상의 더운 바람이 지중해의 수증기와 결합하고 또한 모래와 먼지를 잔뜩 흡착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 1m 앞의 시야도 확보하기 힘들다. 내몽골에서 발원한 한반도의 황사보다 훨씬 뜨겁고 밀도가 높다.

흑암은 곧잘 앞선 여덟 차례 재앙보다 가벼운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전 재앙들이 부분적이거나 점진적이었다면 흑암은 이집트 전역을 순식간에 휩쓸면서 공포를 조성한다. 이점에서 흑암은 이전 재앙보다 한층 강화되고 확산된 상태다. 바로의 마음을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재앙이다. 성서는 흑암을 표징으로 받아들이면서 재앙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출 7:3; 8:23; 10:1-2; 시 105:27). 더구나 사흘 동안 이어진 캄캄한 흑암은 이집트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강력한 재앙이며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히브리 노예들의 신 야웨가 이집트가 숭배하는 태양 신을 어둠과 캄캄한 흑암 속에 가둔 사건이기 때문이다. <Cassuto, 129>

여기서 아홉 번째 재앙 캄캄한 흑암은 과연 창조 이전의 ‘혼돈과 공허’로 표현된 흑암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한다. 성서 저자가 이집트에서 겪는 자연현상을 해마다 찾아오는 주기적인 일이 아니라 창조 이전의 혼란을 연상케 하는 ‘흑암’으로 묘사한 이유는 명백하다.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부르짖으며 근심하는’(출 3:7) 현재의 상황은 곧 ‘빛이 없는’ 창조 이전의 혼돈과 공허 상태와 흡사하다고 본 것이다. 이제 그 혼돈과 공허를 이집트가 맨몸으로 겪으면서 두려움과 혼란에 떨고 있다. 그러니 흑암은 그들에게 재앙이다.

본문에 세 겹으로 소개된 ‘흑암, 더듬을만한 흑암, 캄캄한 흑암’은 각각 창조 이전과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과 바로의 이집트가 경험하고 있는 아홉 번째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제 세 번 연거푸 언급된 흑암은 자연스레 ‘빛’과 대조된다.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23절).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고센 지역에는 캄신이 아직 당도하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다. 신학자는 이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거주지를 비추는 빛은 창조의 빛, 곧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구원이며 해방의 빛이다. 이제 아홉 번째 재앙은 바로와 이집트를 단숨에 혼란과 두려움에 빠뜨리며 마지막 대단원(penultimate)에 다다른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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