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성 교수
5. 흑인, 백인, 조신인 예수?

우리나라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사이비 기독교와 이단들이 설치고 있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성경적 정통 신학의 실종 현상을 보여주는 이단들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에 빠져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교모하게 해석해서 이제 더 이상 하늘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를 세우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서 재림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자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신학적 빈곤에 빠진 자들이 초래하는 왜곡의 극치이다. 재림 주 문선명을 비롯해서 그의 아류로 성장한 자들, 박태선의 이단사상 아래서 성장한 자들이 왜곡된 사상을 퍼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고의 신학자로 손꼽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예수님에 대한 성경기록을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자는 미국 감리교에서 세운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교수였던 샌더스(E. P. Sanders)를 들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을 성전과 유대인의 생활방식을 개혁하려했던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뉴욕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샌더스는 복음서의 양식비평을 연구하면서 유대교적인 예수로 재해석한 지도교수이자 그의 장인이 된 데이비스(W. D. Davies)의 연구를 추종하였다. 누가복음 1장 33절에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는 말씀은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해석되었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9:16) 되신 예수님은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6. 성경을 각색하는 역사적 비평주의

지성이라는 미명아래 혼란에 빠져버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요, 내 죄를 속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르침을 휴지조각처럼 내버렸다. 예수는 열심당에 속하는 혁명가, 청년이었던가? 그래서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은 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이나, 미국의 흑인신학자들이나, 여성신학자들이나, 동성애주의자들이나 모두를 다 포용하고, 관용하며, 용납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해석들 중에서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라고 믿어야만 올바른 것인가?

비상한 두뇌와 해박한 어학실력과 다양한 신학이론들로 무장하고 나오는 신학자들이 내놓는 예수에 대한 신상품들은 일반 성도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키면서 기성 종교를 방해한 마술가라거나, 삼마이파 바리새인들에게 저항한 힐렐 학파의 바리새인쯤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전 인류가 더 이상 따라가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를 파괴하는 자들의 말에 현혹되어서 성경을 버리고 가야만 하는가?

혹자의 주장처럼 무식한 사람들이 많이 살던 갈릴리 지방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예수의 정체성이자 핵심이라고 한다면, 부활하셔서 왕위에 복귀하시는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는 지어낸 이야기가 되고 만다. 유대교에서 영향을 받은 자들은 신약성경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토라”를 탁월하게 재해석해서 가르친 랍비라고만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모세의 경전과 “토라”가 더 높이 있고, 예수는 그저 한사람의 랍비일 뿐이다.

그런 자들에게 베들레헴에 태어난 예수님은 재림 주로서 장차 다시 오실 분이시다. 불트만의 추종자들은 그를 가장 탁월하고 유명한 신학자로 승격시키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신화”라고 깎아내렸다. 성경해석학이 아니라 ‘독일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불트만에게서 절정에 달한 역사 비평학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모두 다 부인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을 신화라고 해야만 졸업을 하였으니, 그러한 자들에게는 성탄절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도 믿지 않는데, 성탄절이 무슨 축복의 날이 되겠는가?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믿는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감동케 하여서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믿는다. 사람의 모든 과정을 체험하시고자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지만, 그에게는 신성과 인성 모두가 겸비되어 있으신 분으로 믿는다(요일 5:20).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교회들이 많은데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뜻도없이 따라서 외우는 것도 문제지만, 정통교회가 물려받은 예수님의 모든 기적들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더욱 더 큰 문제다. 정통 기독교의 신앙이 성경에 근거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작정 문자주의에 빠진 것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현대신학을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역사적 비평적 접근(historical critical approach) 방법론에 빠진 자들이다. 이들이 비판하는 내용들은 전혀 근거 없는 가설들에 근거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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