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환 목사.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2)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장 7-11절)

신약성경 누가복음 말고도 구약성경 이사야 57장 14-19절, 야고보서 2장 5-13절은 ‘겸손’에 대해서 교육하고 있다. 겸손한 사람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겸손한 사람은 항상 주변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것을 보아 왔고, 보고 있다. 예수님은 높아지고 자 하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아지고 자 하는 높아진다고 교육하셨다.

위 성경구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성서의 베드로는 열정이면서 희생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인 예수님을 자기인신을 위해서 악용하는 약점을 그대로 보였다.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의 주권을 마음대로 흔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힘들고, 곤궁하더라도 주님을 받들어 모시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어려움에 처한, 고난당하는 주님을 보고, 좌절한다. 베드로 역시 그랬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과거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아니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억압하는 자의 편에 서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유럽, 일본과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힘의 균형이 세계를 재편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힘과 힘이 충돌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우리정부에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과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과거 일본 식민지 아래서 고난당했던 민족의 아픔을 몰각하고, 친일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경제침략에 대해서 침묵한다. 일본 아베가 대한민국을 못 믿겠다고 하는데, 우리의 군사정보를 아베정부에게 줄 수 있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매우 곤궁하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주권국가인 한국정부는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오늘 일본과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지소미아’종료에 대해 실망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분명 주권국가이다. 주변국들에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제를 우리의 땅에서 논의하고, 결정해본 일이 없다.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은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예수님은 상석에 앉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낮아지라고 했다. 그래야만 높임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해야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과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 지식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본다. 온갖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의학논문을 복사하고, 부모가 대신해서 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 봉사점수를 성공하기 위해 사용한 사람들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멸시하며 천대하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외쳤던 진보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허구성을 명철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씀을 되새기자.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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