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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 교수] 출애굽 자세 (출 12:11)
김창주 교수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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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4  12: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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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창 주 교수

 렘브란트가 출애굽의 단 한 순간을 포착한다면 어떤 장면일까? 열 번째 재앙으로 인한 울부짖는 소리가 이집트를 뒤엎을 무렵 이스라엘은 바로의 허락 하에 비로소 이집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서는 허겁지겁 떠나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행렬에 골몰하기보다는 상징적인 행위를 자세히 보여준다. 아빕(Abib) 월 14일 해질녘에 제물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무교병과 쓴나물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이 때 그들은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는 연출을 수행한 것이다. ‘허리에 띠와 발에 신’은 언제든 여행을 떠날 채비를 가리키고, ‘손에 지팡이’는 말을 비롯한 소유물을 실어 나를 준비를 뜻하며, ‘급히’(ןוזפח)는 이집트에 재앙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하는 다급한 상황을 반영한다(신 16:13; 사 52:12).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은 무엇보다 시급한 임무였기 때문에 자칫 허둥지둥 떠나는 순간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출애굽 서사는 이와 같은 긴박한 상황에도 오직 급하게 탈출하는 순간을 포착하지 않고 절묘하게도 제의적인 측면을 함께 묘사하고 있다. 곧 정한 시간 열 나흗날 해질녘에 흠 없는 제물을 잡아 일정한 의식을 집행하고 음식을 먹는 예식까지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떠날 수 있었다고 보도한다. 그것은 ‘야웨의 유월절’이다(11절). 여기에 묘사된 출애굽의 자세는 엄밀하게 보자면 유월절 식사 예법이랄 수 있다. 그러니 출애굽의 자세란 임박한 탈출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취했는지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열 차례 이어진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줄듯 하다가도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장자의 죽음이 온 이집트를 휩쓸고 나서야 바로는 모세에게 선심 쓰듯 떠나라고 명령한다(출 11:8). 가까스로 승낙을 얻었으니 모세의 마음은 급하기 짝이 없다. 바로가 언제 약속을 뒤집을지 모르기 때문이다(출 8:25, 32; 10:24). 그렇다면 모세와 이스라엘은 바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이집트를 떠났을까? 정작 이스라엘이 보여준 태도는 출애굽을 앞둔 자세라고 보기에는 낯설고 한가롭기 그지없다. 우선 식구에 따라 일 년짜리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7절),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불에 굽고(9절), 고기를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빵과 쓴나물과 함께 먹는다(8절). 아침까지 남은 음식은 태워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10절). 유월절 식사는 여유롭고 편안하게 앉아서 먹지 않는다. ‘허리에 띠를, 발에 신발을, 손에 지팡이를’ 잡고 즉 긴장을 풀지 않은 상태로 급하게 먹었던 것이다.
아빕월 14일의 유월절 만찬 자세는 예수의 복음 선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예수는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명함으로써 당면한 복음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마 8:22; 눅 9:60). 예수의 복음은 긴박하고도 즉각적이다. 마치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지팡이를 잡은 상태로 급하게 유월절 식사를 하듯 언제든지 복음의 명령을 따를 수 있게 준비하라는 시급한 요구에 다름이 아니다. 출애굽이 긴박하게 전개되듯 예수의 복음 역시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마 25:13). 복음의 절박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때 취했던 자세는 놀랍게도 나사렛 예수의 복음 선포에서 거의 정확히 재현된다. ‘급히’(ןוזפח)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신속하게 처리하라는 부사어가 아니다. 대신 ‘곧 다가올 사건을 기다리는,’ 또는 ‘긴장된 마음으로’라는 뜻으로 읽으면 출애굽의 임박성과 복음의 촉박한 현실을 인식하기에 충분하다.<Houtman, 182 > 이 자세는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없어 추수꾼을 요청하는 주인의 안타까운 심정에도 담겨있다(눅 10:2 ff). 허리에 띠와 발에 신과 손에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는 유월절의 식사 예절에는 곧 일어날 출애굽의 해방과 자유, 그리고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기대와 긴장감이 동시에 묻어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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