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프로타고라스 (고대 그리스어: Πρωταγόρας, Protagoras, 기원전 490년 - 기원전 420년)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피스트이며, 토론의 달인으로도 전해진다.

"그 자신이 만물의 척도"라는 상대주의를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것일 수 있는 한에서 그것은 그것이며, 어떤 것이 아닐 수 있는 한에서 그것은 그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서 맛있고 맛없고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재미있고 없고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맛없다고 느끼거나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출처 : 나무위키)

프로타고라스의 재판에 대한 일화가 있다. 자신의 논리에 항상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던 프로타고라스는,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 “돈이 없어도 논법을 배울 수 있느냐?”며 논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그것은 너에게 달려있다.”고 하며, “공부를 마친 뒤, 첫 재판에서 네가 이기면 그 돈으로 수강료를 지급하라는 조건으로 해주겠다.”고 하였다. 청년은 그의 배려로 수강을 하였으나, 청년은 어떤 재판에도 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는 수업료를 받기 위해서 제자가 된 청년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법정에 서게 된 청년에게 프로타고라스는 “어차피 너는 수업료를 물게 되어 있다. 재판에서 이기면 나와의 계약대로 수강료를 물어야 하고, 지게 되더라도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수강료를 물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결국 이겨도 물어야 하고, 저도 물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청년은 오히려 스승인 프로타고라스에게 “저는 수강료를 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수강료를 안 내도 된다는 판결로 제가 이기면 안내도 되고, 제가 지면 스승님과의 계약에 대로 내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응대하였다. 결국 프로타고라스는 청년 제자에게 되치기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을 서로가 다른 해석(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정 반대의 결과(생가)를 낳을(할) 수 있다는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말한다.

작금에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를 두고 극단적 차이를 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정치참여가 가능하다고 하는 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참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목사, 신자들의 극단적 언어, 심지어는 “문재인 대통령을 총살” 운운하며, 국민적 불안을 조장하며, 선동적 행동 등이 세찬 비난에 직면함으로써 기독교 전체에 해악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기 보다는 바람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에 대항하여, “현 정부가 기독교 말살정책을 쓰고 있다.”라는 엉뚱한 거짓말 까지 양산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망국적이며,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선동이 될 수 있다.

물론 꼭 철학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적사고 속에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으로 단일 사건을 두고도 그 판단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석류를 나누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그 맛에 대한 평가 다름과 같은 것이라 할까? 따라서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의 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국(왜국)의 전쟁범죄, 백색국가에서의 제외 등에 대한 것 까지도 평가를 달리하고, ‘조국’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두고도 여 야 간에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가 국익, 국민,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상대주의로 만은 국가, 국민, 민주주의에 해악과 실패만 남게 될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이익에만 매몰 되어 해악과 실패를 심지 않도록 하여, 예수님께서 명하심에 따라 서로를 사랑하는 합일점을 찾아야 한다. 새 계명(誡命)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장 34절)

<다음호에 계속>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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