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항구의 바다 쪽 가로등 위에 앉아 바다를 응시하는 갈매기의 표정은 너무 쓸쓸하기만 하다.

고기잡이 어선을 따라 갔다가 항구를 향해 돌아오는 갈매기의 날갯짓과 울음소리가 내 마음 탓인지 쓸쓸해 보인다.

등대가 있는 방파제의 낚시꾼들이 던져주는 고기를 받아먹고, 항구의 바다 위를 선회하는 갈매기의 날개 짓도 공허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이곳 항구의 갈매기들은 스스로 먹이 사냥을 거의 하지 않고 드나드는 고깃배나 낚시꾼들 그리고 손질하고 버려지는 생선들을 게으르게 얻어먹고 사는 듯이 보인다.

어선과 낚시꾼이 던져주는 고기와 주변 횟집에서 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찌꺼기를 받아먹는 갈매기는 게으르고 얌체 같은 갈매기로 한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갈매기들을 어부들은 '거지 갈매기라고 부른다.

다세대 주택보다 더 시끄러운 갈매기의 집, 방파제에는 내일을 향한 도전과 비전을 모르는 게으른 갈매기들, 거지 갈매기들만 모여 살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신선하고 살아 있는 먹이를 사냥할 생각은 하지 않고, 누군가가 던져주는 죽은 먹거리를 쉽게 구하여 먹음으로 일하는 갈매기들보다 더 살찐 갈매기들의 부둣가의 수다는 수다를 넘어 소음이고, 시끄러움이다.

삐뚤어진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 바닷가 가로등 위에서 멍하니, 물끄러미, 하염없이, 맥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갈매기의 속내를 알고 싶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는 것일까.

기후도 좋고 바닷물도 깨끗하여 갈매기들이 살기에 최상인 미국 대서양 쪽 드넓은 백사장이 휴양지로 개발이 된지 몇 년 후에 갈매기들이 떼로 죽은 일이 있다.

조류학자들은 갈매기들의 떼죽음의 원인이 사람들인 것을 밝혀냈다. 그 원인은 이곳 바닷가 휴양지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갈매기들에게 사람들이 먹는 것들을 먹이로 던져준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던져 준 과자, 비스킷, 빵, 음식 등의 먹이들은 갈매기들이 평소에 먹어 온 자연먹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먹이들이었다. 이런 먹이들을 받아먹기에 익숙해진 갈매기들의 입맛이 바뀌어 바다의 신선하고, 풍부한 자연먹이들을 멀리하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들만을 좋아하며 기다리게 만들었다. 철이 지나 휴양객들의 발길이 끊어져 먹이 주는 이가 없는데도 바다에 나가 자연 먹이를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던져 주는 먹이만을 기다리다 결국 떼로 굶어 죽은 것이었다.

갈매기만 그런가.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류가 생존해 온 세월 속에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얼마만큼 움직이며, 어떻게 활동하며 살아야 건강을 유지하며 잘살게 되는지가 우리 몸에 규정되었고 학습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규정을 어기고, 움을 움직여 일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칼로리 섭취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술, 담배, 커피, 설탕, 고기, 피자, 햄버거 등등…,

어려서부터 몸에 이롭지 못하나 입에 단 음식들, 인스턴트음식들만을 골라 먹으며 움직여 활동하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니 비만, 고혈압, 당뇨 등의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을 여행하며 딱하고 한숨 쉬게 하는 것은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들이 한 손에 들기가 부담스러운 엄청난 크기의 햄버거와 1리터도 넘을 것 같은 콜라 컵을 들고 먹고, 마시며 비만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쓰럽고 딱하기가 그지없다.

진짜 갈매기는 살아있는 먹이를 구하는 갈매기다

갈매기에게 생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먹이를 구하는 갈매기가 진짜 갈매기가 아닐까?

진짜 갈매기는 살아있는 먹이를 구하는 갈매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죽은 것만, 혹은 나를 죽일 것만 좇아 사니, 나는 진짜 사람일거나 싶다.

감히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진짜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늘 강단에서 말씀으로 증거 하면서도 내 삶은 어둠과 멸망과 죽음의 그림자의 포로가 되어 살아간다.

실천과 분리된 앎은 앎이 아닌데도 말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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