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마라톤을 보면 수백 명이 출발하지만 결승점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마지막까지 믿음을 신실하게 지킨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시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고대의 마라톤 선수들은 경주를 할 때 옷을 하나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경주를 하는데 방해되기 때문에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이것은 마라톤 선수가 달려갈 코스를 달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마라톤 선수와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목숨을 내어놓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기자들, 그리고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리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그 결승선에 주님께서 면류관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모두 똑같은 길을 가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에게 달려갈 길이 모두 각자 다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마라톤 경기를 보러온 구경꾼들은 힘들여가면서 달려가기를 원하지 않겠지만 경기에 참여한 선수라면 달리다가 쉬거나 달리다 마냥 노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잠시 세상에 나갔다가 돌아오고 또 달리다가 잠시 쉬고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주님은 물론이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와 같은 자기 앞의 경주를 경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믿음의 선진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고 더 성공하고 물질을 많이 모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달려갈 코스가 아닙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경주를 경주할 때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가 경주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주어진 길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행 13:25)”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증거 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도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달려갈 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까.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으면 그 영광을 사는 동안 누릴 수 있지만 하늘나라의 면류관은 영원한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하는 것은, 이 땅에서 마음껏 누리며 살다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것은 이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영광을 받을 것인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의 영광은 잠깐이고 하늘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생명나무숲전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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