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 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 문 현 미 시인
『행복의 건축』에서 알랭 드 보통은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만큼 환경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새로운 생각이 떠 오르기 쉽고, 좋은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밝고 넓은 쾌적한 공간에서는 창의력이 신장되고 일의 효율성이 배가된다고 한다. 그만큼 공간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부와 행복의 열쇠는 광야의 때에 만나를 주신 그분 안에서 누리는 부유함에 있음을 묵상해 본다.

이 시는 지상의 방 한 칸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시적 화자의 고뇌를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의 초반부터 화자는 견디기 힘든 현실 앞에서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고 토로한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여러 식구가 모여서 잠을 자고 있으니 어찌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는가. 더욱이 가장으로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중압감으로 인해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심정이다. 한 밤중에 홀로 깨어 평화롭게 자고 있는 자식들을 쳐다보는 애비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플’만큼 마음이 몹시 무겁다.

시의 중반부에 이르면 시적 화자인 애비의 직업이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작가인 애비는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대로 열심히 원고지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하니 이 넓디 넓은 지상에서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고 울부짓듯 하소연하기에 이른다.

시적 화자가 겪고 있는 지상의 삶이 무척 초라해 보인다. 늘 전전긍긍하며 한 고비씩 겨우 넘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집 방 한 칸에 세들어 사는 식구들의 모습이 가슴을 누르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가족의 어려운 살림살이가 눈에 선하게 떠 오르고 어느새 눈물이 핑 돈다. 시인 자신의 실제 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시이다. 어떤 미학적 수사 장치가 달리 필요가 없다. 때로는 진정성 있는 컨텐츠로 탁월한 시어의 선택과 행갈이를 통해 아름다운 시의 집을 완성할 수 있다. 시인 특유의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낸 애틋한 서정의 여운이 잔잔하게 밀려오는 가을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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