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목사.

주전 486년경 유대민족이 바사강국의 속국으로 있었을 때 하만대장의 모함으로 유대민족이 말살당할 위기에서 이 계략을 무너뜨려야 유대민족을 구원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은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인 에스더가 나서야 한다. 그 당시 바사제국의 법으로는 아무리 왕후라도 사전 허락 없이는 왕 앞에 나갈 수 없다. 만일 왕의 허락 없이 나감으로 왕의 노여움을 사면 하루아침에 폐위나 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더가 고민하며 주저앉아 있을 때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향해 충고하며 경고의 말을 하였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며 말이 없으므로 유다인을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는냐”고 말씀하고 있다.

모르드개의 충고를 들은 에스더는 주저하다가 결단한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결심하고 에스더는 벌떡 일어나 왕 앞에 나가 위기에 놓인 유대민족을 구원해 낸 것이다.

인도 속담에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방법이 나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에겐 구실과 변명만 나온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자신과 교회와 이 사회를 향해 불편한 진실을 외치는 모르드개가 필요하지 않은가.

성군 다윗이 범죄 했을 때 모르드개 같은 나단이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세례요한인 모르드개가 되어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회개를 외칠 수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가까워짐으로 국정농단이 일어났을 때 청와대 안에 모르드개 같은 참모가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가 깨닫고 결단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오늘의 보수정권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김정은은 비핵화의 의지가 없는데도 몇 번 만났다고 너무도 안일한 평화만 외치고 있고,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굶주림에 대해선 불편한 진실 한 마디도 못하고 있는 대통령에 대해서도 모르드개 같은 용기 있는 참모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20세기 지도자 마틴루터킹 목사는 “이 세대는 나쁜 사람들의 악한 행동보다 의로운 사람들의 침묵에 대해서 회개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독일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그 시대에 독일교회가 모르드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본회퍼는 자책하면서 마지막으로 외치다가 그는 순교하였다.

눅19:40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들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하나님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모르드개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먼저 나 자신 속에 모르드개가 있어서 나를 바로 서게 할 것이며, 한국교회 안에 모르드개가 있어야 한국교회가 회복될 것이며, 이 사회와 이 정부를 향한 모르드개가 있어야 이 사회가 바로 정화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기감 전 감독회장‧도봉교회 원로목사‧본지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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