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다. 독일 통일 후, 평화통일운동을 해온 한국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학술단체와 시민단체들, 심지어는 정부도 나서서 독일 통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상황이 통일은커녕, 평화의 길조차 요원하다는 것이다. 주변 강대국, 특히 미국과 일본, 중국의 입김에 이리저리 흔들리기 때문이다. 남한 정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은데, 북한의 대남 비난도 사태를 종잡을 수 없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도 갈수록 첩첩산중으로 국민들의 걱정을 낳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일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이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월간<기독교사상 10월호>에서는 ‘특집-새로운 한일관계를 향하여’를 마련해 한일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망했다.

이번 특집에는 서울시립대학교 정재정 명예교수를 비롯해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김성제 총간사, 게이센여자대학교 이성전 명예교수(번역 이상훈)가 ∆1960년대 이후의 한일관계, 그 특성과 비전 ∆한일 민주화운동 연대의 역사와 전망 ∆나와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의 제목으로 참여했다.

먼저 정재정 명예교수는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일본이 시비를 건 이래 나빠진 한일관계가 지금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며 “특히 문재인 정부와 아베신조 정부의 충돌은 민간 부문에까지 악영향을 미쳐 양국 국민의 감정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졌다. 1965년 한일 국교 재개 이래 가장 험악하다”고 위기에 빠진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명예교수는 “일본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정치 혼미 등으로 내외 문제의 극복이 늦어져서 국력신장에 활기를 띠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일취월장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며, “결과적으로 1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인 일본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와중에 한일관계도 일방적인 종속•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상대적 경쟁•경합 관계로 바뀌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통과의례’이다”고 꼬집었다.

정 명예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은 잦은 마찰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수준에서 본다면 국교 재개 이래 절차탁마하면서 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며 “두 나라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인권옹호 등 전 지구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동질의 국가를 이룩했다. 그리고 각각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는 지렛대로도 기능해왔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따라서 양국이 서로의 성취를 긍적적으로 평가하고 좀 더 적극적인 협력 방법을 모색한다면 세계의 문명 발전에 함께 기여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면서, “이번의 격렬한 충돌을 계기삼아 한국과 일본이 두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공동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런 가운데 역사인식과 과거사 처리 문제에 관하여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김성제 총간사는 2•8도립선언과 3•1독립운동부터 지금까지의 한일간의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면서 “지난 8월초 일본 나고야에서 일어난 ‘평화의 소년상’ 전시 중지 사건은 일본 헌법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일본에서 빈사 상태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면서 “일본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입헌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한국교화의 연대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총강사는 “7월 초순부터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문제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 관련 세 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현재 한일관계는 해방 후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며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지금이야말로 깊이 숨어 있던 것이 여실히 표출되는 상황에 두 나라가 놓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 총강사는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넘을 수 없었던 식민지주의의 잔재를 제대로 응시하고,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전후 책임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며, 우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동북아 전체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또한 한국과 일본이 우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함께 평화운동을 펼쳐나가며 그 유대를 강화해나가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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