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간음죄(姦淫罪)’와 ‘동성애(同性愛)’ 어느 것이 더 무서운 죄일까? 물론 ‘동성애’도 ‘간음죄’의 일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간음죄’가 계명에서 시작하여 계시록 말미까지 거론되고 있음을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들의 문제는 죄가 되지 않고, “성소수자의 인권도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무거운 짐을 지우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임으로, 제거해도, 죽여도 된다는 이념(理念)몰이로까지 발전시키며, 살의를 품고 있다면 과연 그러한 기독교인을 ‘본회퍼’와 동등의 위치에 올릴 수 있을까?

물론 믿음이 그러하듯 모든 죄 역시 경중(輕重)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소수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끌어들여, 반대의 절대적 요건으로 삼아 항거(抗拒)를 하는 목적에 이용한다면 이는 무슨 죄가 되는 것일까? 과연 정치적 욕구에 의한 목적에 성소수자 논리를 앞세우는 행동들을, 전쟁 등에 의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 학살하는 ‘히틀러’에게 항거한 ‘본회퍼’와 같이 여겨야 한단 말인가? 오직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거(抗拒)를 한다는 것만으로 ‘본회퍼’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항거(抗拒)의 목적이나 대상 등이 ‘본회퍼’의 목적, 대상과는 다른 의미라면, 그 항거(抗拒)만으로, 감히 ‘본회퍼’라 말할 수 없으며, 도리어 ‘본회퍼’를 모독(冒瀆)하는 것일 뿐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독일어: 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1945년 4월 9일)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이다.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외국 첩보국(독일어: Abwehr)의 구성원에 의해 진행된 계획에 가담하였으며, 1943년 3월 체포되었으며,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1945년 4월 교수형에 처해져 39세를 일기로 성안(聖安)에 들어갔다.

그의 인생은 ‘의’(義)라는 글자로써 인류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감동적으로 실천한 성직자다. ‘히틀러’와 ‘나치’의 억압에 맞서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항거의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 ’본회퍼‘의 인생은 로마 제국의 압제와 유대교 지도자들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의 빛을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구간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자신의 전부를 희생의 성혈(聖血)로 불살랐던 까닭은 무엇인가?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출처 : 본회퍼의 선데이)

수많은 사람들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고, 심지어는 고문, 살상,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금에 ‘본회퍼’ 운운하는 어떤 이들의 면면에서, ‘본회퍼’와는 정 반대로 군부독재에 등에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박수를 쳐 온 사람들도 눈에 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작금에 이르러 자신들이 ‘본회퍼’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외쳐댄다면, “이는 무엇이지?”하고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가차 없이 이념적(이데올로기) 시각으로 몰아갔으며, 또한 ‘본회퍼’ 등과 같은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자신들이 ‘본회퍼’를 대단히 추앙하는 것처럼 주장을 한다는 데서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본회퍼’를 모독(冒瀆)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로새서 3 : 5-6)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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