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사람은 두 가지 굶주림과 두 가지 갈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육체적인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은 밥이나 고기처럼 먹어서 해결되는 위장의 굶주림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굶주림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육체적인 굶주림 보다는 영혼의 굶주림으로 인해 더 고통 받고 괴로워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나는 아직 배고파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살펴보면 영혼의 굶주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혼의 양식이 없기 때문에 오는 괴로움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괴로워하는 이유는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참 생명의 떡이다.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아니할 것이다.”(요6: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은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굶주린 사람만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자기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고 굶주려있을 때 그것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고 주님께 나오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굶주림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 주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며 아직 자기 영혼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 짐이 자신에게는 전혀 무거운 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체 위에는 어떤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아도 결코 무겁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장사 지낼 때는 시체를 삼베로 강하게 동여맵니다. 살아있는 사람 같으면 숨 막혀서 못살겠다며 견디지 못하겠지만 시체는 전혀 말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특징은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참 생명의 떡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에는 이 생명의 양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세가 주는 것은 진정한 양식이 아니라 일시적인 양식이었으므로 그것을 먹는 자는 죽었습니다. 생명의 떡 되신 주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6:5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살을 주어서 먹게 할 수 있겠느냐며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은 영혼의 굶주림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서는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은 세상에서 물질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영혼의 굶주림은 더욱 심하다는 것입니다.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일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도 그것을 증명합니다. 자기 내부로부터 오는 어떤 굶주림을 채워보기 위해 술, 담배, 마약 등 여러 가지를 해보지만 진정한 만족은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을 때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면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나무숲전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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