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희 목사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대부분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아 11월 셋째 주일에 지키고 있다. 간혹 일부교회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9월에서 11월 사이에 재량으로 감사절을 지키기도 한다.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 대부분이 지키고 있는 11월 셋째 주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추수감사절 헌금이 교회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시기상조 일 수밖에 없다. 농촌교회의 사정은 더욱 그렇다.

추수감사절이 축제의 자리이기보다는, 헌금을 거두어들이는 하나의 절기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이 축제의 자리가 아니라,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도 1년 농사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때문에 일부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을 추석에 맞추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감사절의 헌금이 교회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추수감사절을 11월 셋째 주일로 고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더해야 할 농촌교회의 사정은, 추수감사절을 추수가 끝나지 않은 추석에 맞춰 지낸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것은 추수감사절의 헌금이 교회예산의 40%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농촌교회들은, 추석을 기해 감사절로 지킬 경우, 벼농사를 비롯해 모든 곡식이나 과일을 거두기에 이른 편이고, 시기도 일정하지 않아 교회의 절기로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추석 시기에 감사절을 지키게 되면, 추수감사절 헌금의 감소는 물론이고, 혼란을 가져다가 줄 수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도시교회 교인 대부분은 십일조 헌금을 드리고 있는 상황에서, 소득 또는 소출의 1/10을 추수감사절 헌금으로 드린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추수감사절의 헌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농경사회가 아닌 산업사회에서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의미가 축소되어가고 있는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감사절은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일부교회가 추수감사절을 기해 지역사회의 주민들에게 쌀을 전달하거나, 교인들이 드린 첫 곡식과 열매를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 훈훈한 정을 나누고 있다. 일부교회는 감사절의 헌금 전액을 소년소녀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에 사용하고 있다.

일부 도시교회가 추수감사절에 헌금을 드리는 교회력에 의한 절기를 넘어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 있다. 일부교회가 갈수록 추수감사절을 의미 있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추수감사절을 총동원주일로 지켜, 감사절을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1년 동안의 소득과 소출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있지만, 이를 넘어 사람에 대한 추수의 의미도 있다.

전도의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절을 겸해서 드리는 것이다.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추수감사절로 승화시키기 위해 교인들이 드리는 헌금보다는, 교회의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일부교회의 추수감사절을 겸해 지키는 총동원주일은 교회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일부 도시교회는, 추수감사절의 헌금을 건축비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교회마다 부채를 추수감사절 뒤로 미루는 것만 보아도, 추수감사절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교인들에게 있어서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할 추수감사절이, 부담의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 11월 셋째주일을 전후해서 감사절로 지킬 수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헌금에 치중한 감사절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이 1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소득과 소출에 대한 감사의 축제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극면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이 단순히 감사헌금을 드리는 연례행사를 넘어,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실정에 맞는 토착화된 감사절을 정착시킬 시기에 이르렀다.

/예장 우리총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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