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지으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감탄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지은 모든 것, 곧 그 앞에서 형태를 갖게 된 모든 것들이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하고 아름답던 창조 세계가 인간의 죄로 인해 선함과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세상은 다시 빛을 잃고 어둠의 포로가 된다. 존재했던 것들이 비존재가 된다. 여기저기서 빛을 잃은 생명체들의 신음소리가 진동한다. 바로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빛을 잃은 창조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창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한복음서 1-2장은 창세기 창조 이야기를 다시 쓴 것이기도 하다. 신약성서 가운데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가장 많이 기록한 책이 요한복음서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요한은 예수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선언한다.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먹고, 입고, 마시고, 대화하시며, 사귐 가운데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신다. 예수의 고난은 여기서 설명된다. 몸 즉 물성(物性)을 지니신 분이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하시면서 불가피 고난을 겪으신 것이다.

고난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새 창조 이야기는 마침내 요한계시록에서 빛이 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 앞은 처음 창조를, 뒤는 새 창조를 묘사한 것이다. 어둠 가운데서 비존재였던 만물들이 빛을 받아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시편 시인이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2)고 노래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창조 세계에서 생명체로 존재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지구촌은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 산불, 태풍, 지진 등 천재지변이 그치지 않고, 수많은 생명체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더 이상 자연을 정복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소유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하나님과 대립하는 행위이다. 이제는 ‘소유’가 아닌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사귀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생명세계와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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