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히브리어 ‘얌 수프’(ףוס-םי)은 대부분 ‘홍해’로 번역되었다. 그 뿌리는 <불가타>의 ‘mare Rubrum’에서 기인하지만 <70인역>의 ‘evruqra.n qa,lassan’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얌 수프의 사전적 의미 ‘갈대 바다’가 어떻게 ‘붉은 바다’로 불리게 되었는지 신비에 가깝다. 4세기 제롬의 번역은 문화적 차이나 정보의 결핍 때문이라고 양보한다고 해도 기원전 3세기 유대인들의 ‘홍해’는 납득하기 어렵다. 대부분 기독교 핵심 교리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보다 라틴어 성서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섣불리 ‘얌 수프’의 사전적 의미를 내세워 ‘갈대바다’로 교정하려는 것은 본문의 이해보다 엉뚱한 논란을 야기한다.

한글성서는 거의 ‘홍해’로 옮겼고 최근 번역인 천주교 <성경>만 ‘갈대바다’를 유지한다. 최근 영역본도 대체로 전통적인 번역 홍해를 따른다. 흠정역을 비롯한 GNB, NIV, NRSV 등이 the Red sea를 유지하지만 유대교 성서 JPS는 the Sea of Reeds, 곧 ‘갈대 바다’로 표기한다. 실제 한글 번역에서 ‘수프’(ףוס)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옮겨진다. ① 갈대(출 2:5), ② 바다 풀(욘 2:5), ③ 부들(사 19:6), 그리고 ④ 산호, ‘숩’ 으로 음역한 경우(신 1:1)도 보인다.

어원적으로 보면 수프는 파피루스 재료인 갈대를 가리키는 twf를 차용한 단어다. <Lambdin, "Egyptian Loan Words," JAOS 73.3 (1953) 145-55.> 수프의 표기는 히브리어지만 내용은 이집트어로서 소리나는 대로 옮긴 음차에 해당한다. ‘수프’는 소금기가 적은 깨끗한 습지나 강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종이를 만들 수 있는 ‘바다 풀’은 주로 이집트 하구의 델타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라암셋이나 고센 등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스라엘의 탈출 경로와 맞물린다. 그러면 얌 수프와 전통적으로 홍해로 불리는 지역과는 다른 것일까? 현재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 일대를 포함한 지역은 수프의 서식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홍해의 후보지일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에돔 땅 ‘홍해’ 물가 엘롯의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축조하게 한 것을 보면(왕상 9:26; 렘 49:21) 홍해가 어디인지 더욱 헷갈리게 한다. 그러니 ‘얌 수프,’ 곧 ‘갈대바다’를 지리적으로 추정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70인역>과 <불가타>는 얌 수프를 본래적인 의미와 동떨어진 ‘붉은 바다’라고 번역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건넜을 나일 강 하구 지역에 ‘바다 풀’ 산호초가 붉게 서식한다는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왕성하게 번식한 붉은 산호초는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출애굽 경로에서 얌 수프를 지난 후에도 한 동안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적어도 지중해 연안의 산호 지대쯤이었을 것이다. <70인역>의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은 고센 지역의 생태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여 ‘evruqra.n qa,lassan’ 홍해로 번역하지 않았을까? ‘수프’의 사전적 의미 ‘갈대’보다 지리적 생태적 특징과 시각적 인상을 살려 ‘붉다’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수프’에 대한 규명보다 ‘얌’이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 출애굽 당시 ‘바로’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은 것처럼 ‘얌’ 역시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함축된 의미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체로 얌은 바다를 뜻하나 본질은 ‘물’이다. 따라서 물의 중의적(重義的) 의미를 살피는 것은 출애굽 사건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물은 ① to drown: 물에 빠져 익사하다. ② to divide: 공간의 이편과 저편을 가른다. ③ to clean: 오물이나 때를 씻어낸다. ④ to grow: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생명 유지와 성장을 돕는다 등을 함축한다. <엘리아데, 이미지와 상징, 165-66>

물보다 훨씬 거대한 바다 곧 ‘얌’은 ①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을 집어 삼킬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그곳을 건넘으로써, ② 이스라엘은 이제 ‘종 되었던 집’ 이집트와 구별되었으며, ③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자유인으로 거듭났고, ④ 마침내 가나안을 향해 행진할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받은 것이다. 이 모든 원동력은 ‘얌’ 즉 엄청난 물의 중의적 의미와 맞물린다. 그렇다! 출애굽은 거대한 바다 혼돈의 물에서 구원이며 동시에 그로부터 자양분을 얻어 살아가는 새 출발을 뜻한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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