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나를 껴안는다
모든 이들이 찌푸리는 걸,
불평 한마디 없이
편안한 자리 마다하고
구석에 자리한 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누추한 삶의 처마 아래
거북하게 속 가득 찬
당장 버려야 할 것들
온 몸으로 껴안고
더러움 속에 슬그머니
버린 알량한 양심까지도,
세상에 떠돌던
한때 아끼던
낱말들을 소중히 보듬는다
간밤에 버리지 못한
쉬어빠진 추한 목소리까지
거르지 않은 채 터질 듯 물고
굳게 다문 입술로
모퉁이에 버티고 서 있다

누구나 한때는 다 버려지는
아픔을 견디며,

 

- 『기독시문학』 2019년 하반기 호

*전민정 《창조문예》 등단 한국기독시인협회 사무총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수상: 대한민국환경문화대상(시부문), 한국현대시100년 '한국대표 명시 낭송대회' 대상 수상시집 ; 『어찌 그대를 꽃에 비하랴』, 『갈대처럼』, 『목숨을 연주하며』 등

▲ 정 재 영 장로
시는 기본적 생명은 비유(은유)다. 표현하고 싶은 말을 사물로 들어내는 것을 형상화(이미지)라 한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이런 요소가 없으면 비록 운율을 맞추어 놓았다 해도 그것은 단지 행갈이만 한 산문일 뿐이다. 이런 전제를 통해 예시 작품을 보면 시의 진미를 금방 알게 된다.

시 제목인 쓰레기통 이미지를 빌어 의미를 드러내는 면은 현대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첫 행부터 역발상의 융합적 요소가 있다. 쓰레기통의 불결한 모습을 역으로 껴안는다 함은 더러움과 애정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 말은 자기사랑의 면을 말하는 것이지만, 신앙으로 해석한다면 죄인을 껴안아 주시는 신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확장성을 가진다. 쓰레기통은 수동성의 성격을 많이 가진다. 이동성보다는 고정성이다. 이 면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 위치를 지시해주고 있기도 하다. 원죄라는 죄성을 가진 피조물의 오염된 요소를 특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한때 아끼던 낱말’이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유행했던 사조의 변질과 쇠락을 말한다. 인간 세상에서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의미다. 인간적이란 시간에 의해서 낡아지고 폐품이 되어 쓰레기로 유기되는 면은 기독교 조직신학(교의학) 중 인간론(인죄론)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 연에서 누구나 버려지는 것과 아닌 것, 즉 구원이란 쓰레기통에서 건짐을 받아 새롭게 탄생하는 거듭남의 축복인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상상은 아니다. 이처럼 독자가 시인의 의도와 달리 자기 입장에서 다른 상상의 세계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시다. 이것은 독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좋은 시란 애매성(ambiguity)를 가진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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