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사 랑 목사

한국교회는 감사의 계절을 지난 성탄의 계절을 맞고 있다. 성탄의 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며, 나누는 의미도 크다.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병들고 지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서 그 사명을 다했다. 그러나 교회가 세계화의 자본주의에 길들여지면서, 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일하는 교회로서의 다명을 다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라고 불리던 당시 한국기독교회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교회도 ‘돈’이 ‘신’이 되어버렸다. 성서의 경제정의인 ‘나눔’에서 크게 이탈했다. 선교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가진 것을 이웃들과 나누며, 이들과 생활공동체를 이루었다. 나라 잃은 민족을 위해서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 놓은 인사들도 있었다. 한국교회 안에 생명이 흘러 넘쳤다. 성서의 경제정의인 ‘나눔’을 철저하게 실천했다.

1991년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독일 <슈미켈>의 기자는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의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렘린의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다”고 오늘 세계화의 현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묘사했다.

세계화를 통하여 미국 1극체제로 변한 세계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다. 세계는 이제 미국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한국교회가 친미적인 모습을 띄며, 같은 민족인 북한 민족을 적대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기독교가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은 부정하면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태극기집회를 주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여기에 침략국인 일장기까지 등장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한국교회는 한국선교 당시부터 철저하게 영미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으며, 민족구원을 거기에 기대어 왔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아 왔고, 받고 있다. 이런 교인들의 시각은 북한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우리민족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쉽게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남북한의 비핵화,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노래하는 국민들을 향해 ‘좌경’, ‘빨갱이’로 매도해 버린다.

오늘 분단된 대한민국은 남북한의 경제 교류도, 한반도의 평화도, 한민족의 화해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늘 자유라는 이름으로, 민주라는 이름으로 한민족은 미국에 의해서 끌려 다니고 있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더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식민지세력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세력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몰각했다. 그 중심에 한국교회가 있었다.

오늘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빠져 반통일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또한 남한 민족만이 가는 곳도 아니다. 남북한 민족, 아니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하는 곳이다. 성서는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신학자와 선교신학자들은 하나님께 드린 재물을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 가난한 세계민족,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재투자하라고 선언한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활동 하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한다. 성탄의 계절을 맞은 한국교회는 맘몬과 바벨를 경계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난과 각종질병으로 우는 자들의 아우성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성탄절을 만들어 보자.

마라나타세기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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