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형이 오늘 적이 되고, 어제의 아우가 오늘 적이 되는 세상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갑자기 형, 아우가 된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는 ‘어깨’가 엄연히 존재한다. 형이라고 부르고, 아우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이웃 간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자매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형님’, ‘아우’의 호칭이다. ‘목사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정감이 가기도 한다.

문제는 ‘형님’, ‘아우’의 관계가 얼마나 가느냐는 것이다. 함께 가다가 무엇인가 뒤틀리면 돌아서는 것이 목회자이며, 교인들이다. 목회자와 교인들에게서는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교회 안에서 분쟁이 한번 발생하면 끝을 보이지 않는다. 한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일반법정에 고소 고발하는 사건이 수십 건에 이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피도, 눈물도, 사랑도, 용서도 없다고 말한다.

그 만큼 인간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목회자의 고집은 일반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요즘 종로5가는 70을 훨씬 넘긴 원로목사들이 지금까지 형님, 아우로 잘 지내오다가 갑자기 적대적의 관계로 변해 버렸다. 이 둘은 수십 년 동안 형님, 아우로 지내왔다. 누가 보아도 친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다. 헌데 형님 목사가 한국교회로부터 문제의 단체로 규정한 단체와 함께 일본 통일교연수원서 ‘한민족동질성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둘의 관계는 적대적이 되었다.

아우 목사는 “이단종파와 함께 했다”는 이유로 임원회를 열어 이 행사에 참여한 형님 목사 등을 제명했다. 그러면서 이 둘은 적대적의 관계로 변해버렸다. 형님 목사는 일본에 가기 전 자신이 먼저 교단 탈퇴를 했는데 무슨 면직이냐고 항변했다. 그 이후에도 형님 목사는 ‘신통일한국을 위한 기독교 성직자 희망전진대회’에 참석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누가 보아도 이 둘이 형제라면, 서로 권면해서 여기에서 빠져 나오도록 했어야만 옳다는 지적이다.

이 둘의 적대적인 관계를 보다 못한 큰 형님이 중재에 나섰다. 이 둘은 큰 형님의 중재로 여러 차례 만났다. 큰 형님의 말에 의하면, 얼굴을 맞대면 적대적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며, 화해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이 헤어지면 다시 적대적의 관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형님 목사는 “화해하고 돌아서서는 자신을 욕한다”는 주장이다. 아우 목사는 “화해하고 돌아서서 SNS로 자신을 향해 이해하지 못 할 글을 목회자들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이 둘은 갈데 까지 갔다. 처음부터 형제라고 말하지를 말든지. 나이 70을 훨씬 넘긴 원로목사의 보이지 않는 다툼은 볼썽사납다. 피도, 눈물도, 사랑도, 용서도 없는 목회자의 고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는 목회자 부인들까지 개입돼 씻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아우목사의 부인은 잘못된 단체에 빠진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냐는 것이다. 여기에 맞서 형님 목사의 부인은 과거 아우목사로부터 피해를 본 것을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세상 사람은 서로의 갈등을 술 한 잔으로 해결한다. 짐승은 훈련과 때려서 굴복시키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이 둘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만을 내세우는 여야 국회의원들을 보는 듯 하다. 교회와 나라가 풍전등화인데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 정치인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사랑과 용서를 외치는 목회자는 정작 사랑도, 용서도 없다. 오직 자신의 고집을 내세워 자신의 정적을 단죄한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탄의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싸움과 다툼에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자.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성서의 교훈을 잊지 말자. 분명한 것은 목사가 목사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고칠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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