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무조건 항복하였고, 스파르타의 장군 ‘뤼산드로스’는 30인 참주(僭主)를 내세워 아테네에서 독재체제가 펼쳐지게 하였다. 당시는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고, 남의 재산을 빼앗는 등의 일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혼란스러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태도와 신념을 지켰다. 하지만 이 시기 ‘소크라테스’에게는 “반역자를 양성하는 자”라는 오명이 씌워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이름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지인들마저 섞여 있었다. 그들은 바로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이다. 소크라테스는 30인 참주들이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사형시키고,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것을 보았다. 이에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던 그는 공격을 개시한다.

“소치는 목동이 소 떼의 수를 줄이고 자기 소들이 말라가는데도 자기가 서툰 목동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기묘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국가의 지도자가 된 자가 시민의 수를 줄어들게 하고 국가 도덕의 질을 저하시켜 놓고도 그걸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자신이 형편없는 지도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더 기묘한 일일 것이다.”

이 말은 30인 참주의 귀에도 들어갔고, 곧 그 일원이었던 ‘크리티아스’와 ‘카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하였다. 그들은 법조문을 내세워 ‘소크라테스’가 젊은이와 대화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럼 내가 명령받은 것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몇 살까지를 청년이라고 하는지 그 한계를 정해주시오” ‘카리클레스’가 대답했다. “아직 지혜가 여물지 않았기 때문에 5백인 평화회의 의원이 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나이를 말하는 것이오, 즉 당신은 30살 이하의 자와는 말을 나누어서는 안 되오.”~ (중략)
‘소크라테스’는 목동에 빗대 그들을 비판한 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자신의 활동에 제재를 가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인간의 일과 도덕을 주제로 삼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선의 방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그 끝에 자신이 최선이라 생각하여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옮겼다. 따라서 그는 언제 어느 곳에서 죽음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될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용기로, 죽음을 맞이하느냐, 정의와 선을 버리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단연코 죽음을 선택하려는 태도를 보였다.(출처 : 소크라테스의 변명, 국가 향연)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에는 사람들을 고문하거나, 살인, 학살 등을 조장, 동조, 선동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소크라테스’를 죽이는 사형에 처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종교 등을 불의하게 이용하여 고문, 살이, 학살 등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비록 기독인이 아닌 한 철학자의 삶 속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묻어나고 있음에, 기독인들 곧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생명의 소중함을 저버리고 폭력적 언행을 정당화시켜서는 안 되지 아니한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금하시며, 기뻐하지 아니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 외쳐대는 작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도리어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워 폭력(고문, 살인, 학살 등)을 선동, 조장, 동조 등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가? 도대체 그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갈망)하며, 성탄절을 기념하고자 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폭력을 선동, 조장, 동조 등의 말이나 행동을 금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兄弟)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慈悲)하심으로 너희를 권(勸)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靈的) 예배(禮拜)니라(로마서 12:1)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