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탁기 목사.

아기 예수가 죄 많은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뜻 깊은 성탄절이다. 이맘때쯤이면 세상 온 천지가 성탄절을 기념하기 위한 각양각색의 준비에 한창이다. 당장이라도 귓가에 온누리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찬송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매서운 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이 만국에 울려 퍼질 것을 생각하니 온화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현실은 온화한 느낌보다는 회색빛 차가운 느낌이 든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인 맘몬이 대신 자리를 차지한 모양새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정체불명의 캐롤은 귓가를 따갑게 만들고, 울긋불긋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십자가 불빛마저도 감춰버린다. 깊은 어둠에 신음하던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신 아기 예수의 향기 대신, 길거리는 흥청망청 취해버린 맘몬의 악취만이 코끝을 자극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성탄절마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는 관심조차 없는 자들이 예수의 자리에 산타를 앉혀놓고,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는 온갖 세속적 재물탑을 쌓아놓고 있다. 성탄절 하루 전부터 시작되는 이들만의 축제의 불꽃은 꺼질 줄 모르고, 술병은 켜켜이 쌓여간다. 그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낭비한 돈은 굶주림을 참다못해 초등학생 아들과 우유를 훔치다 적발된 ‘장발장 부자’에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액수다.

결국 굶주린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등 이 땅에 소외된 이웃들에게 성탄절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이라기보다, 가진 자들이 흥청망청 쓰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날이다. 그렇다고 이 찢어지는 마음을 누가 쉽게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해마다 연말이면 줄을 이었던 도움의 손길마저 끊겨버렸다. 오죽하면 ‘장발장 부자’의 소식에 온 국민이 눈시울을 적실 정도다.

분명한 것은 성탄절은 가진 자들의 축제의 날이 아니다. 아기 예수가 죄 많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은혜로운 날이다. 그저 가진 자들이 술 마시고 춤추는 세속적인 축제로 치부하지 말고, 주 안에서 모두가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이 땅에 소외된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의미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대로 따르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변모해야 한다. 이 나라 정부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사회는 그들의 아픔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보듬어주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선봉에 한국교회가 서야 한다. 재정의 30%를 사회에 환원해 이 땅에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이 땅에 더 이상 ‘장발장 부자’ 같이 가난에 굶주려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2019년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온 천하에 울려 퍼지길 소망하며, 우리 사회에서도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선한 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가득한 성탄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스도교회협 증경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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