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환 목사

아기 예수의 탄생은 제국주의의 불의한 세력을 거부한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는 이스라엘은 이미 로마에 의해 평정되고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졌다. 이 로마평화는 창과 칼에 의한 평화, 팍스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얻은 평화이다. 압제와 수탈을 강요하는 평화였다. 오늘 세계는 기독교국가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살상무기를 계속해서 생산, 개발하고 있다.

오늘 1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세계를 20번 파괴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다. 간간히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핵운동은 묵살되고 있다. 분명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거짓된 평화를 깨고, 진정한 평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참 평화에 이르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인류 역사의 고통, 가난하고, 처절하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사무친 한과 결부되어 있다 것을 …

그래서 그의 탄생은 억압과 불의에 대한 항거를 뜻한다. 그의 탄생은 요란하기는커녕 초라하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에 의해서 박해를 받는다. 아기 예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다. 갈릴리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다가 위선자들과 율법주의자,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런 아기예수의 탄생일 날, 세상 사람들은 술과 환락으로 본능을 발산하며, 성탄절을 모독하고 있다.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들뜬 마음으로 성탄절을 보낸다. 여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욕심을 버리고, 사사로운 원한과 미움을 풀고, 그리스도의 평화와 공의를 실천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서로 나누면서 축복해 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처절한 역사의 현장에서 절망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고통의 현장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또 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린 노숙자가 있다. 또한 자식을 사회의 구조악으로 잃어버린 가족이 있다. 이들의 절규는 오늘도 하늘에 사무친다. 이들을 위로하지 못하는 교회, 한마디로 희망 없다. 오히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을 비난하며, 목회자들은 이들을 비난하는 글들을 SNS를 통해 퍼 나르기에 바쁘다.

이 땅에 오늘 아기예수가 오신다면, 한국교회를 향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걱정스럽다. 성탄절 아침 한국교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보잘 것 없지만, 누구보다도 보잘 것 없는 이들(존귀한 사람)을 향해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지 않고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할 수 없다. 아기 예수를 맞을 자격도 없다.

인천 갈릴리교회 목사,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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