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사랑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태복음 18-25절)

이 성경구절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기예수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 예수는 ‘구원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이름 속에 그리스도의 사명이 담겨져 있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 할 것”이라고 했다. 백성의 운명과 백성의 죄는 하나님의 백성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오늘 한국교회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면, 불의와 거짓에 맞서 싸우고,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위해 봉사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불의를 보고서도, 침묵한다는 것이며, 오히려 불의한 사람들에게 협력하면서 교회를 성장시키고, 성장시키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정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처음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는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몰각하고, 가난하고 천박한 사람들을 향해 회개와 구원,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만 강요했다. 가난한 백성들이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서 ‘회개하라’고 했는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정교분리’를 내세워 일본식민지세력을 정당화 해 주었다. 이는 결국 일본 국가주의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배교행위를 저지르는 결과를 불러 왔다.

그리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국민들을 향해 일본군에 협력할 것과 젊은 대한민국의 딸들을 향해 정신대로 갈 것을 설득하는 일에 앞장섰다. 해방이후에는 불의한 군사독재정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도,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곳,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을 대해서 침묵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데도 연세대학교 김명구 교수는 “1907년 대부흥운동이 대한민국 독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역사를 왜곡한다.

2016년 국민들이 이것만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회의 일부 성직자와 교인들은 ‘한일군사보호협정’에 대해 침묵하며,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오히려 ‘빨갱이’로 매도했다. 어느 정당의 전도사님은 이것을 내걸고 청와대와 국회를 왔다갔다하며, 단식을 벌인다. 어느 목사는 밤마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고성방가로 청와대 주변 주민들을 괴롭힌다. 이것이 마치 국민 모두의 뜻으로 호도한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로마팍스’가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곤궁한 백성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일본군강제징용자와 노무자, 그리고 인본군성노예 피해자를 향해 막말을 쏟아낸다. 이들은 분명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군화발이 한반도를 다시 짓밟아도 행동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굴절된 역사를 바로 잡았다면, 이 같은 오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라나타세기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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