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내부적인 원인에서 찾았다. 세계 문명 21개 중 19개의 쇠망이 전쟁과 같은 외부적인 파괴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부패, 절망 에 따른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며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희망을 잃게 되면 가정도 사회도 문명까지도 기울기 시작한다.

성경에 하나님은 늘 기다리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이 된다. 하나님의 자비와 너그러움이 곧 기다림이라면 우리도 조바심을 내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약속의 때를 인내로써 기다려야 한다.

곰탕 국물을 우려내기 위해서도 뼈를 솥에 넣고 최소한 8시간 이상 불을 때며 기다려야 한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 여름 내 땀 흘려 추수의 때를 기다리고, 산모는 잉태함으로 출산을 기다리며, 밤은 아침을 기다리고, 겨울은 봄을 기다린다.

이 땅에는 기다릴 것도, 기다릴 사람도 없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몸이 아프지만 건강을 기다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가난하지만 부요함을 기다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은혜이다. 밤이 되어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것, 허기가 느껴지면 맨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을 지라도 은혜로 밥상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매일 아프고 힘들지만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 나의 가난함, 질병, 부족, 실패, 연약함조차 부러워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 오랜 기다림을 불평하는 것조차 오히려 사치가 아닐까?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일 년 동안 농부들이 땀 흘려 논을 갈고 씨를 뿌린 후 오랜 기다림 끝에 풍성한 결실을 수확하면서 그 처음 결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이 온갖 고난을 이기고 첫 수확한 곡식과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시작된 추수감사절은 우리나라에서는 1904년부터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지키기 시작하면서 11월 셋째 주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했다가 그 후 수요일에서 주일로 변경되어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들이 매년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는 기다림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뿌리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다. 기도의 응답도, 전도의 열매도, 교회의 부흥도, 사람의 변화도, 문제의 해결도, 믿음의 성장도, 조바심을 몰아내고 묵묵히 인내하며 추수의 때를 기다려야 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묵시(희망)가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한 성경의 가르침처럼 눈앞의 상황만 보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위한 징검다리로 오늘을 바라보며 인내함으로 기경하고 씨 뿌리는 수고를 기뻐하자. 풍성한 추수의 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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