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모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장인의 그늘에 맡겨두고 이집트로 떠났다. 이드로는 사위 모세와 이스라엘의 근황이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이집트 국경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탈출 사건과 야웨 하나님의 하신 일이 사막의 대상들을 통하여 미디안 제사장에게도 전해졌다(출 18:1). 모처럼 이드로는 딸 십보라와 두 손자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의 장막을 찾았다. 서로 문안하고 그 동안 이집트에서 겪은 과정과 기적적인 사건을 나누었다. 그러자 이드로는 야웨를 찬양하고 모든 신보다 뛰어난 분임을 고백한다(출 18:10-11).
이렇듯 화목한 분위기는 지속되지 못하고 모세의 바쁜 일정 때문에 중단된다. 곧 모세는 다음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의 재판 때문에 꼼작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켜야 했다. 제사장 이드로의 눈에는 모세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거슬렸다. 아론의 협력은 바로를 설득하는데 일조했지만 광야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송사에 모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기다리느라 지치고 모세 한 사람이 모든 재판을 도맡는다면 오래갈 수도 없거니와 마침내는 기력이 쇠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원로의 경험과 지혜와 경륜이 필요하다. 이드로는 <르우엘 이드로 호밥>에서 논의한 대로 ‘대감,’ 또는 ‘폐하’를 의미하듯 자문이나 법적 상담을 할 수 있는 지식과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가 모세의 하루 일과를 살펴본 후 대뜸 “자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평가한다(17절).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말이 있듯 혼자 송사를 도맡는다면 효율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이른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을 세워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들이 재판하게 하라. 그러면 큰 사건은 모세가 맡고 작은 일은 그들이 나눠가지면 자네의 업무가 가벼워지리라(20-21절).

여기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 처음 나온다. 이 직책들은 금세 알 수 있듯 글자그대로 천 명, 백 명, 또는 열 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용어다. 송사를 다루던 상황에서 군대 지휘관을 암시하는 조직은 맥락에 썩 들어맞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책임을 나눠가지는 경우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원리를 사막의 원로에게서 확인한다. <Eli Gottlieb, "Mosaic Leadership: Charisma and Bureaucracy in Exodus 18," Journal of Management Development 31.9 (2012): 974-83.> 22절의 ‘가볍다, 쉽다’는 히브리어 ‘칼랄’(ללק)의 사역형으로 ‘빛을 비추다, 밝게 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체력적 부담이 적어 가뿐하다는 의미보다는 불현 듯 ‘깨우치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모세는 자신의 권한을 부분적으로 내려놓는다. 자신의 임무를 누군가에게 맡기려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드로는 교육과 제도를 통한 신뢰구축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드로의 충고가 빛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적인 사법체계를 갖추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지휘체계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나중에 여호수아(수 22:14), 사울(삼상 18:13), 다윗(삼하 18:1), 여호사밧 등이 천부장과 백부장 등을 세워 자신의 지휘관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는 모세를 정점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만 탈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광야의 유랑 시절은 모세 한 사람이 더 이상 백성들의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드로의 눈에는 모세가 여전히 출애굽을 이끌던 지도자로 백성들의 송사와 요구 앞에 일일이 대응하는 미분화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점에서 이드로의 조언과 모세의 수용이 보여준 의의는 크다. 즉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다스릴 수 있는 기틀을 다진 것이다.

모세에게 이드로는 혈통으로 장인이고 신앙적으로 이방인이다. 한 부족의 제사장이자 원로의 권고를 수용함으로써 모세는 오합지졸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어떻게 이끌 것인지 해답을 찾은 것이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운다는 것은 모세의 절대적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분담한다면 모세의 책임이 훨씬 가벼워진다는 사실 앞에 모세는 화들짝 놀란 듯 깨우치고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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