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륵함

팔이 없는 사람이 성호를 긋는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바람 부는 일

그의 기도였구나

-시집 『간절함』에서

신달자 시인: 『열애』 『종이』 『북촌』 등 15권
                  공초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상문학상. 서정시문학상. 은관문화훈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역) 문화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

▲ 정 재 영 장로
갸륵함은 착하고 장하다는 뜻으로,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즉 완숙 지경의 시인이 팔이 없는 신체불구자나 장애인을 보고 느끼는 경이의 감성이다.

성호를 긋는다는 말은 신앙대상자에게 기도를 하거나 자기의 소원이나 염원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다. 즉 이 작품에서 나오는 두 인격 즉 시인과 장애인의 사이는 완벽한 신과 결점이 많은 인간 사이를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팔이 없는 성호는 마음으로 긋는 성호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하고 순수한 깊이를 가진 소원이며, 신 앞에 구하는 기도라는 것이다.

첫 행은 유무(有無)의 간극이다. 팔이 있고 없음의 차이다. ‘없음’에서 창출되는 순수의 ‘있음’을 말한다.
둘째 행은 공간을 초월하는 마음이다. 우주적 존재의 모든 일을 말한다.

3행에서 말하는 바람이란 알 수 없는 일들의 총칭이다. 즉 총체적이거나 개인적인 역사나 행위를 의미한다. 경계의 끝과 끝 사이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담론이다. 알 수 없는 존재의 숨겨진 의미를 말한다. 예측 못하지만 숨겨진 이유를 첫 행의 행위에서 찾는 것이다. 즉 기도다. 마음속으로 긋는 기원이 우주적 원인을 만들고 있다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담론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마지막 행은 신만이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모든 역사는 기도의 동력에서 기인함을 시인은 자기 삶으로 간증을 하는 것이다. 팔이 없는 사람은 실은 시인 자신의 이야기다. 자기 독백 즉 신 앞에서의 신앙고백을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입장에서 인간의 기도의 모습이 갸륵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팔은 보이는 바람을 움직이는 근원적 동력임을 말함으로, 마음의 힘과 그 능력의 결과를 보여준다. 통시적 삶을 투시한 사람에게서만 깨닫는 거대담론이다.

졸저 『융합시학』에서 존재유무의 양극화 이미지가 하나로 융합됨으로 새로운 의미 창출인 컨시트(conceit)를 만드는 것을 융합시라고 명명하였다. 이 명시는 그런 요소로 구성됨을 밝혔던 것이다. 역시 이 작품도 그것을 강하게 변증하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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