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금년 로스앤젤레스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석권했다. 크게 축하할 일이다. 한국 영화로서는 새로운 역사를 쓴 날이기도 하지만, 동양계 영화에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던 아카데미가 최초로 동양계 영화를 정상에 올려놓은 쾌거이다. 그동안 아카데미 영화제는 ‘백인영화제’ ‘미국 로컬영화제’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비영어권 영화에는 폐쇄적이었다. 시대의 흐름이 단단한 유리벽을 스스로 깨뜨리게 했다 해도 무방한 일이다.

<기생충>이 거둔 놀라운 성취는 “봉준호라는 희귀한 재능에서 비롯됐다”(이민아/경향)는 논평이 말해주듯, 독특하고 자유 분망한 상상력과 유머감각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봉준호이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수많은 영화 예술인들과 함께 불온한 좌파라며 블랙리스트로 감시 통제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민을 감시 통제하고,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재단했을 때 자유로운 상상력은 억압된다. 인간의 오랜 관습과 종교적 신념에 의한 편견과 차별 역시 자유로운 상상력을 고갈시키고 인권을 유린한다. 특별히 한국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곳에서 성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이들은 인권 사각지대로 밀려나 자존감을 지니고 살기 어렵다.

최근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여성이 숙명여대 법학과 정시전형에 합격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숙명여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등 패미니즘 동아리 23개 단체가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누구든지 여자라는 공간을 침범하고 기회를 빼앗아가게 할 수 있다”(성명서)는 이유로 그녀의 입학을 극렬 반대했기 때문이다. 성전환 여성이 여자라는 공간을 침범하고 기회를 빼앗아간다는 발상이 놀랍다. 현직 총리 가운데 동성애자인 나라가 여럿이지만,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끼리 경합하는 아이오아 코커스(당원대회)에서 38세의 동성애자인 부티지지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사실을 그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금년 아카데미가 그걸 보여준다. 이제 축하 못지않게 영화 <기생충>이 제기한 한국사회의 빈부격차와 차별 문제를 직면할 때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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