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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관념을 버리고 한민족의 중재자•화해자가 되라3.1만세운동 101주년을 진단한다 … 침략국인 일본은 대한민국의 동맹이 아니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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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6  1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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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만세운동 101주년 맞은 한국개신교는 관념을 버리고 한민족의 중재자•화해자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일본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다

3.1만세운동 101주년을 맞았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년 동안 3.1만세운동을 오늘의 상황에서 민족사적, 기독교사적으로 평가하고 조명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가 100년 동안 3.1만세운동이 일어난 3월1일에 맞춰 기념행사에만 치중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한국교회의 3.1만세운동 행사에는 민족대표 33인, 아니 기독교 대표 16인만 있었다. 만세운동의 주체인 기독농민, 기독여성, 기독학생, 기층민중은 없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스스로 3.1만세운동을 평가 절하했다. 일본식민지 아래서의 기독교 항일민족운동에 대해서 왜곡했다. 그렇다보니 기독교 성직자와 교인들의 입에서는 위안부 할머니와 노무자들을 향해 왜곡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한마디로 101년 전 전국에서 일어난 기독교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평가와 조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배타적인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은 선교사들과 무관하게 일어난 한국개신교의 민족해방운동이며, 독립운동이다. 또한 예수님의 비폭력평화운동이다. 한민족의 자주독립운동이다. 한민족의 내면에는 작게나마 민족의식이 존속되어 왔다. 특히 3.1만세운동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운동이며, 자주독립운동이고, 예수님의 비폭력평화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한국교회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와 함께 기념사업을 펼쳤다. 이에 맞서 일본 아베정권은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보복을 단행했다. 국민 모두는 곤궁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아베의 경제보복에 차분히 대처했다.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슬기로운 대처로 인해 일본 경제보복을 극복 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일부 정치인과 종교인, 학자들의 친일적인 발언은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에 맞서 싸우는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는 사실.

특히 일부 기독교인들의 막말은 수 십 만명의 교인을 교회에서 떠나게 했다. 이것은 분명 3.1만세운동의 역사성을 몰각한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권사는, 국민들은 일본 아베정권의 경제보복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데, “아베에게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 권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문제는 이 권사의 행동이다. 한민족의 역사를 몰각하지 않고서는 이같은 행동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이들을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한국 개신교 135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가 내놓을 수 있는 민족해방운동이며, 자주독립운동이고, 예수님의 비폭력 평화운동인 3.1만세운동을 왜곡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수적인 한국개신교는 진보정보가 들어설 때마다 반대 아닌 반대운동을 펼쳐 정부를 압박해 왔다.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문재인 정부 등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그 때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반공궐기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진보정부의 가치를 훼손하기에 바빠다. 3.1만세운동과 8.15 해방절의 자리는 한마디로 반공궐기대회의 자리로 변질시켰다.

여기에는 보수적인 한국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의 공산주의, 아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정권과 가깝게 지내는 진보정부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공산주의인 북한의 김정은 보다는 과거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이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은 우방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분명 대한민국의 우방이 아니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국가이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서 민족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곤궁한데, 보수적인 일부 개신교인들과 일부 정치인, 일부 학자들은 국가의 자존심을 구기면서, 일본과 무조건 화해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안보’를 내세워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한마디로 북한의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로마팍스를 외쳤다. 분명 이것은 예수님의 평화운동(샬롬)과 성서에서 이탈한 것이다. 심지어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외치는 동역자들을 주사파 빨갱이로 매도했다.

3.1운동 비폭력 평화운동(샬롬)

왜 이들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에 대해서는 화해하라고, 우방 또는 동맹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민족인 북한과는 화해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가. 거기에는 ‘관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과거 군사정권과 북한은 정권과 체제유지를 위해 민족분단을 철저하게 악용해 왔다. 대한민국은 남북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념적인 갈등을 치유 할 수 없는 것은 극명하다. 이념갈등과 정쟁만이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이후, 대한민국은 이념적인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진영싸움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많은 빨갱이가 만들어졌고, 많은 양민들이 학살당했다. 많은 양심수가 감옥에 갔다. 신학자인 안병무 박사는 “오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한반도의 분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 청와대 앞의 집회와 서초동의 집회 역시 분단의 산물이다.

히틀러는 혼자 유대인 600만명을 살해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 기독교인들의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관념’이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요즘 보수적인 인사들의 행동은 과거 인권, 사회정의 등을 외치면서, 군사독재정권을 비롯한 친일정권 등과 맞섰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군사독재정권과 친일정권에 맞섰던 진보적인 교회를 향해 정치에 간여한다고, ‘정교분리’를 내세워 비난하던 보수개신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제는 민주화된 나라의 정부를 못 믿겠다고 아우성치며,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일본 아베정부의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보복을 단행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친일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3.1만세운동으로 희생된 애국자들의 아픔을 안다면, 일제의 만행으로 인해 고난을 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다면, 이 같은 언행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이들은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몰각하고, 한민족의 주체성을 상실한 결과가 가져다가 준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일본 아베 정권은 아시아-태평양에 주둔한 미군이 떠나면, 그 곳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다. 간교한 아베정부는 미국에 아부하기에 바쁘다. 아베정부는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보니 한국에 친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일단계로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에 맞서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의 이런 행동은 도를 넘었다.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일본과 싸워서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일본 아베는 간교하다. 한민족은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지 아래서 하나가 되어 왜놈들과 싸웠다. 보수적인 목회자와 친일정치인, 친일학자들은 이런 아픔과 민족의식을 몰각했다. 일본과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정부와 국민 대다수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국민들은 일본여행 자제를 비롯하여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을 차분하게 벌였다. 소제개발과 수입 다변화로 이를 극복했다. 3.1정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위대했다. 민주화된 나라의 국민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일본 아베정부의 경제보복에 맞서 싸우는 국민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한민족의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친일적인 인사들의 막말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이들은 국민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아베 빌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이들은 일본 정신대로 끌려간 대한민국의 소녀들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 매춘부의 길을 선택했다’고 비방하는가 하면, ‘징용피해자들의 보상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이미 끝났다“고 일본 아베의 입장을 변호한다. 분명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팔아 자신의 안위와 부를 챙긴 매국노들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지 않고서는 막말을 할 수 없다. 친일 정치인과 친일 학자, 일부 성직자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싸우는 국민들의 아우성소리를 외면했다. 오히려 이들을 향해 주사파 빨갱이로 매도하며,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면서 아베에게 사죄한다고 말한 어느 권사의 행동,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을 돈 벌기 위해 매춘부가 되었다고 말하는 전 송모 국회의원. 이들을 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신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이 언제 아베에게 돈 달라고 했는가. 이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한민족에게 용서를 빌고, 사죄하라고 했다.

피해자를 비난하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일부 인사들의 태도는 역겹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들이 정치를 한다고 나서고 있으니, 더욱더 안타깝다. 3.1만세운동 101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일제 아래서 고난을 당한 이 땅의 소년들과 소년, 부모들의 한을 풀어주는 한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서 화해자•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아베는 과거 식민지 36년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민족은 마음을 열어 일본 아베를 받아드릴 수 있고, 용서 할 수 있다. 글로벌시대에 이웃으로 함께 살 수 있다. 아베는 과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 용서해 달라고 한민족에게 한 번도 빌어 본 적이 없다. 한민족은 빌지를 않는데, 어떻게 아베를 용서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 가능한 나라로 바꿔, 다시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이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가 다시 일본군의 군화발에 다시 짓밟힌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일본은 한국에 경제적 부흥의 계기를 가져다가 주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은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 때문에 부자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화해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의 아베정부라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남북한의 대화로 한반도의 평화가 무르익어갈 즈음 일본 아베는 트럼프를 7번 만났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베가 간교한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간교한 아베에게 희망을 걸 이유가 없다. 이런 일본을 우방이며, 동맹이라고 말하는 친일적인 인사들을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 일부 성직자와 교인의 친일적인 행동, 간교하고, 간사한 일본과 화해하라고 외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천왕(미신)을 믿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믿음을 상실한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오늘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의 이 같은 믿음은, 선교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에 이의가 없다. 영미의 정통주의 신학과 경건주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렇다보니 한국개신교는 원리주의에 갇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배타적인 종교가 되었다. 심지어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신성모독까지 한다. 이들에 의해 하나님은 살해당해 오늘 한민족은 하나님은 없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렇다보니 자유를 내세워 아무렇지 않게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친일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진영싸움의 중심에 서 있다.

또한 영미교회의 배타성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된 한국개신교는 우리의 토양에 맞는 한국적 신학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배신하고,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강단에서 해방자 하나님을 외치기보다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죄의 규탄과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 됐다. 그러니 하나님 없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죄의식을 전혀 갖지 않고 친일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 우방•동맹 운운 한마디로 천박하다

한국기독교역사 130년을 뒤 돌아보면, 한국교회는 국가권력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본 일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 말에 한국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는 왕의 절대권력과 밀착되었다. 일본 식민지 아래서는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정교분리’를 주창하며,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구약성서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는 교인들은 교회에서 추방하는 죄를 범했다.

또한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정권 아래서도 교회는 권력의 주변에 있었다. 그것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아래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교인들은 공동체로서의 전통을 이루어 왔다. 교인들은 선교사들과는 무관하게 애국심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3.1만세운동에 전체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국민들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반 아베운동과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인 이유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 같은 애국심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본국의 선교부에 보낸 보고서는 3.1만세운동에 가담한 한국교회 교인들을 ‘불순분자들의 반정부시위’라고 매도했다. “미국이 한국을 구원해 줄 것이다”고 믿었던 한국교회의 지도자와 교인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실망한 기독교의 신앙을 가졌던 애국지사들은 교회를 떠나 1920년도에 창당된 조선공산당에 가담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반면 한국교회는 같은 해 남산에 신사가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 침묵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나, 오늘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과 정치인, 국민들은 “미국이 도와 줄 것이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일본과 미국의 1905년 러일전쟁 직후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안다면, 이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는, 일본은 한국을,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기로 상호 승인했다.

이와 같은 양국의 범죄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은 미국과 일본의 밀월 관계에 주목하며, 일본의 경제보복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국민이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곤궁한 상황서 동맹이라는 미국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보수적인 인사들의 “미국이 도와 줄 것이다”는 희망이 빗나갔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혈맹인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종료에 대해서 ‘실망스럽다’는 말을 사용하며, 우리정부를 압박했다.

여기에다 친미주의자와 친일주의자들은 ‘한•미•일 동맹’ 또는 우방 국가를 내세워 친일적인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이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경제보복에 맞서 슬기롭게 대처했다. 오늘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이념논쟁을 벌이고 있다. 안타깝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 사실 내향적 타계적 성향을 띤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해방 이후에도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음과 양으로 일본의 죄를 규탄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설교 내용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교육 등을 통해 민족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해 왔다. 그런데 일부 대학교수와 정치인, 목사의 입에서 일본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의 아픔은 몰각하고, 일본에 몸 팔러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으니, 이들이 관연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그리스도인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한국교회! 이념논쟁에서 벗어나라

일부 정신 나간 사람들의 친일적인 발언은 국민의 정서에서 크게 이탈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인기와 출세를 위한 발언이다. 일본의 경제침략은 노골화되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생각은 천박하기 그지없다. 여기에다 대부분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관념에 사로잡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교회를 걱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 역시 글로벌시대에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일부 인사들이 일본을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은 천박하다.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할 말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근신하고 회개해야 한다.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고난당하던 민중들의 아픔에 대해 침묵했던 교회가, 오늘 민주화된 나라에서 이념갈등을 부추기며, 국민분열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한국교회는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미완의 3.1만세운동을 완성시켜야 한다.

그리고 천왕을 신으로 섬기는 일본은 언제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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