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 목사.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고 모세에게 명령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제국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적 신앙고백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과 착취가 없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했다. 통치와 종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 7-10절)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제국의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앗시리아와 바벨론제국에 의해 좌절됐다. 나라 잃은 백성이 되고 말았다. 이집트, 앗시리아, 페르시아, 시리아, 로마와 같은 대제국에게 짓눌리어 1천여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갈망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민중을 선동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그 후 예수님이 나타나 “때가 다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외쳤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억압과 수탈을 당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과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101년전 전국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 역시 일제의 수탈과 억압에 항거하여 일어난 새로운 나라를 갈망한 한민족의 독립운동이다. 일제의 총칼에 죽임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찾으려는 민족자결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아니 힘없고 천박한 조선백성의 새로운 나라를 향한 하나님나라운동이었다. 3.1만세운동은 길 삼해서 가족들에게 옷을 입힌 민족의 어머니인 기독여성, 밭을 갈아 가족들에게 밥을 먹여주던 기독농민, 민족의 희망인 기독학생, 청년들이 중심된 민족적 항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낡고 무력하고 경직된 조선왕조가 수명을 다해 갈 무렵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남녀평등과 사민평등의 이념을 앞세워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타락한 이조 말엽의 봉건왕조에 비하면, 기독교가 표방한 이념은 새롭고 희망에 찬 것이었다. 기독교는 급속히 서민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새로운 문물과 이상을 추구하던 지식인들이 앞을 다투어 교회로 몰려 왔다. 그것은 기독교선교가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명을 다한 이씨 봉건 왕조의 압제와 수탈에 신음하던 가난한 백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당연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또한 이들은 생명의 담지자로서, 민족의 어머니로서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분명 3.1운동은 조선 백성의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독립선언서는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라”라고 선언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조선의 백성들은 맨몸과 맨손으로 일제의 총칼에 대항했다.

비록 일제의 칼에 몸은 찢기고, 총에 가슴에 구멍이 나 목숨을 잃을망정,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승리를 거두고, 지금까지 그 정신이 살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총칼로 조선백성을 괴롭힌 식민지 세력을 기념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아무 저항 없이 죽임을 당했다. 그의 삶과 죽음은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며, 평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고난을 통해서만이 하나님나라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로마 제국에서 박해를 받던 교회들도 신앙고백으로 항거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도 말로써 그 시대의 불의와 폭력에 맞섰다. 남북한은 날카롭게 대처하며,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다. 분단의 벽은 높고, 단절은 깊다. 이 땅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3.1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라면,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예장 합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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