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률 목사.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하였으나 다윗은 그를 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울이 다윗에게 독 안의 쥐의 상태가 된 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다윗의 책략과 지혜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23:5의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상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시23:1),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랬던 다윗이 본문에는 혼미한 모습을 보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그를 죽이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사울을 피해 다니다가 지쳤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위험을 헤쳐 나왔던 다윗이 엘리야처럼(왕상19:3-4), 베드로처럼(마14:30), 자신의 형편을 보고 하나님을 의뢰하던 것에서 벗어나 ‘상책’을 썼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삼상27:1). 상책이란 가장 좋은 대책이나 방법을 의미합니다. 이런 다윗의 가장 좋은 상책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거짓말입니다.

그는 가드왕 아기스 아래 들어가 자신이 이스라엘과는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로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10-12절).

다윗이 아말렉을 치고서는 유다 남방을 쳤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가드의 자랑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의 두려움이 된 다윗이, 이젠 가드왕 아기스에게 빌붙어 지내기 위하여 거짓말까지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책은 거짓을 낳게 합니다.

다윗이 상책을 좇아 살아간 또 하나의 결과로는 그로 인하여 자신은 물론 처자식, 또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게 하였다는 점입니다. 하루는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 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삼상28:1). 아기스가 블레셋 군대로 이스라엘을 치게 하는데 다윗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블레셋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 되었습니다.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사흘 길을 행하여 그가 머무는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 성읍은 불에 타버렸고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은 모두 아말렉 사람들에게 사로잡힘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윗과 함께 한 백성들은 울 기력이 없을 만큼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심지어 그를 죽이자고까지 하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난 다윗은 그제야 자신의 상책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30:8).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아말렉 군대를 쫓아간 그들은 가족은 물론 함께 잃어버렸던 재물들도 도로 찾아왔습니다(30:18-20). 하나님의 자비였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벗어나 사람의 상책을 의지하게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책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성경 상에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일(마16:23), 땅의 일(빌3:18), 육신의 생각(롬8:7), 본능(유:10) 등입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사탄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마16:23).

사탄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존재들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이 지금은 그 때보다 발전하여 용이 되었습니다(계12:9). 오늘도 아담과 하와처럼 신자들이 그들의 꾀에 넘어가는 이유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책인 사람의 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지 않고 인간적인 상책을 좇아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마귀의 올무에 잡히고 맙니다.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마26:41).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세상에서 깨어 기도하여 상책이 아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촌예배당 
웨이크 사이버신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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