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이집트 탈출 직후 숙곳에 당도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은 유아 외에 ‘장정 60만’이었고(출 12:37), 나중에 시내 광야에서는 레위인을 빼고 20세 이상이 603,550명이었다(출 38:26; 민 1:46; 2:32). 그 밖에도 ‘중다한 잡족’과 포함된 식솔들을 합산하면 전체 출애굽 인원은 적어도 200만 명, 많게는 300만 명 정도로 예상할 수 있다. 출애굽과 관련해서 이 숫자의 신빙성은 이따금씩 논란이 되었다. 야곱의 자손 70명이 과연 이집트 거주 430년 만에 그렇게 많이 번성할 수 있을까?

우선 ‘60만’으로 번역하는 셰스 메오트 엘레프의 히브리어 표기를 분석해야 한다. 처음 연결된 두 낱말 셰스-메오트는 각각 6과 100이다. 다음의 엘레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관건이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숫자로 환산하면 603이고 엘레프를 천으로 읽으면 어림수 60만이 된다. 그러나 이 숫자의 허구성을 인식하였는지 유대교 내부에서도 이스라엘의 다산적 측면을 여러 차례 강조하거나(출 1:7, 19), 심지어 여섯 쌍둥이(septuplets) 이론을 제시하며 결코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한다.<Rashi, Exodus, Ex. 1:7> 더구나 오경의 증언 역시 일관성이 없어 문자적으로 믿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있다. 아무튼 ‘장정 60만’이 40년 동안 광야 유랑했다는 사실은 고고학적으로도 뒷받침할 수 없고 사회학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중론이다. <Houtman, 70.>

현대 주석가들은 ‘장정 60만’의 과장된 점을 인정하고 60진법에 근거한 숫자가 아닌지 추측하기도 한다.<Jerry Waite, "The Census of Israelite Men after their Exodus from Egypt," VT (2010) 487-91.> 여기서는 두 가지 제안을 소개하며 설명하고자 한다.

1) 엘레프를 알루프로 읽고 ‘분대,’ 또는 ‘소대’라고 해석하는 입장이다. 페트리는 ‘알루프’를 아홉, 혹은 열 명으로 구성된 분대(contingents)라고 이해한다.<Petrie, Researches in Sinai, 207.> 실제로 알루프가 한 집단이나 수장을 가리킨 적도 있다. 예컨대 ‘에돔 두령’(출 15:15), ‘가문의 대표’(수 22:14), ‘문중의 부대’(삿 6:15), ‘유다 족속’(미 5:1) 등에서 번역어는 다르지만 알루프를 숫자로 인식하지 않고 지도자, 또는 작은 단위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르우벤 지파 46,500명은 46호(戶) 500명의 두령, 시므온 지파 59,300명은 59호(戶) 300명의 두령 등으로 풀어야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계수된 ‘603,550명’은 ‘603호 550명의 두령’이니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은 6천 명쯤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것은 회막 봉사를 위해 계수된 30-50세의 남자 8,580명과 견주하자면 설득력 있는 수치에 해당한다(민 4:48).

2) 출애굽 때 603,550명이 탈출했다는 기록은 사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다소 엉뚱한 이 발상은 14세기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칼둔(Ibn Khaldun)이 내놓은 이론이다.<이븐 칼둔, 『무깟디마』 1-2권, (서울: 소명출판, 2012).> 그는 성서의 역사가 연대기적이거나 동양적인 기전체(紀傳體)의 서술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데서 착안하였다. 즉 이스라엘 역사에서 출애굽과 성전 건축은 중차대한 사건으로서 상당한 시간적 간격(time-bound)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동질의 시간대와 일관된 사건으로 상호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성서에서 시간(time)이란 크로노스가 아니라 시대(era)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으며 동시에 특정한 시기(period)로 구별할 수 있다.<Sarna, 100> 따라서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출애굽이라는 주요 사건과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고 ‘출애굽 480년’(왕상 6:1)의 연표는 자연스럽다. 이 때 ‘출애굽 480년’이란 예루살렘 성전 봉헌으로 출애굽의 시대가 완성되었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곧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 예배하겠다’(출 3:18)는 이스라엘의 요청이 예루살렘 성전 봉헌으로(왕상 8:1-66) 마무리 되었으니 한 시대(era)가 성취된 역사적인 시간(time)이었던 것이다.

다시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계수된 603,550 명으로 돌아가자면 굳이 출애굽 시점과 광야 시절에 묶일 필요는 줄어든다. 그 수치를 통일 왕국시대 이스라엘의 인구로 여기는 관점은 성전 건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출애굽을 직접 경험한 것인 양 생각하고 성전 봉헌을 출애굽 해방의 기쁨으로 받아들인 신학적 사유의 결과다. 출애굽에 참여한 이스라엘 장정 60만은 결국 예루살렘 성전 봉헌의 기쁨을 선취적으로 누린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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