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이다. 구약성서 에스겔에 오직 한 번 언급되어(겔 3:15) 한글로는 ‘델아빕’<개역, 새번역> 또는 ‘텔 아비브’<공동번역, 성경>으로 음역되었다. 먼저 ‘아빕’의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반 명사로 줄기에서 나온 여린 새순(green shoots)을 뜻한다. 히브리어 ‘에브’(בא)는 처음 돋아난 잎사귀를 가리키고(욥 8:12; 아 6:11), 아랍어 ‘이비브’는 가축을 방목할 수 있는 널따란 목초지(herbage)다. 아람어 ‘아나브’는 겨우내 죽은 듯 보이는 잿빛 들판에 파릇한 새싹, 혹은 이파리 없이 피어난 봄꽃이다.
2) 아비브는 보통 보리 이삭이나 햇곡식을 가리키는 집합 명사로 쓰인다.<Houtman, 158.; de Vaux, Ancient Israel, 183-84.> 의미상으로 아시리아 어의 ‘신선한, 밝은’ 등의 아바브와 관련된다. 여기서 보리 이삭이 패서 여물이 아직 들지 않은 푸른빛이 감도는 상태도 해당하고(출 9:31) 봄에 거둬들인 수확물을 뜻하기도 하다(레 2:14). 아마도 이집트 하류에서 2-3월에 거둬들인 추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3) 정관사와 함께 ‘호데쉬 하아빕’은 유대력의 1월이다. 이 달에 이집트 탈출이 있었기 때문에 일 년의 기준이 된다(출 13:4). 따라서 하나님은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새번역>출 12:2)고 명령한다. 하지만 민간전승에서는 ‘늦은 비’가 오고 푸른빛이 감도는 아빕 월을 따른다(신 11:14; 렘 5:24; 욜 2:23). 더구나 아빕 월은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은 춘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변화가 비롯되는 시작의 중요성을 확보하게 된다.

아빕 월은 나중에 니산(ןסינ) 월(月)로 바뀐다(느 2:1). 그 명칭이 ‘니산’으로 공식화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빕 월이 계절적으로 봄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에 이집트 탈출의 역사성을 담보하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니산, 곧 ‘탈출’이라는 의미를 직접 언급함으로서(출 13:4) 출애굽의 역사성을 강조하려는 명명(命名)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계절의 변화가 중첩되어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기념비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달의 시작과 해의 출발’로 삼았다(출 12:2).

위에서 살펴본 ‘아빕’의 용례를 염두에 두면서 ‘텔’(לת)과 함께 연관지어보자. 본래 텔은 지표층이 여러 차례 쌓여 봉긋한 언덕이나 산처럼 보이는 인위적인 지형을 뜻하는 고고학적 용어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면 마치 커다란 무덤처럼 보이는 텔을 이곳저곳에서 마주친다. 텔은 반드시 물의 확보와 더불어 관측과 방어에 유리한 장소여야 하고 또한 주변에 경작할 들판과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다. <독일성서공회> 해설은 ‘텔아비브’가 아카드어로 ‘오래된 폐허’란 뜻이지만 히브리어로는 ‘이삭의 언덕’처럼 들린다고 풀이한다. 드보는 ‘푸른 알곡의 달’로 읽는다. 하지만 앞선 논의를 반영한다면 ‘봄의 언덕,’ 곧 ‘봄이 오는 언덕’으로 옮길 수 있다.

초대 수상 벤 구리온은 1948년 5월 14일 수도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만천하에 선언하였다. 텔아비브는 시온주의 운동의 선구자 헤르츨의 독일어 소설 제목 ‘오래된 새 땅’(Altneuland)을 히브리어로 옮긴 말이기도 하다. 번역자는 ‘오래된 새 땅’에서 새 출발과 희망을 발견하고 ‘텔아비브’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텔아비브의 고고학적, 신학적 의미가 정교하게 반영된 셈이다. 왜냐하면 텔의 주인과 시간이 바뀌면서 새 층이 덧입혀지듯 옛 터전위에 새 이스라엘의 문명이 거듭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벤 구리온은 오래된 땅(altland) 위에 새 나라(nueland)의 봄을 꿈꾸며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포로기 예언자 에스겔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그발 강가의 ‘텔아비브’에 홀로 오른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ביבא)이 올 무렵 노란 듯 푸른빛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린다. 아빕 월에 새로운 생명이 약동한다. 바로 그 때 에스겔이 주의 영에 감동 받고 ‘텔아비브’에 올라서 칠 일간 머물렀다. 올해도 ‘봄의 언덕’에는 겨우내 잠자던 땅위에 새 생명이 파릇파릇 솟아날 것이다. 어린 햇순이 벌써 움터오는 아빕 월을 맞는다.

한신대 구약학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