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성 길 목사

요즘 무심코 던진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 돌아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느 목사는 “하나님 너 까불면 죽어”라고 말했다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합동측, 백석측, 고신측, 합신측,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한국침례회 8개 교단 이단사이비대책협의회로부터 ‘이단’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말을 내 뱉기 전에 한번쯤 생각하고 신중하게 내뱉으라고 말한다.

무심코 내뱉는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목사인 나 역시 대화를 나누면서, 아니 설교를 전하면서, 교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나 않았나 조용히 생각해 본다. 가끔 교인들과 상담을 하다가보면, 목회자의 저주스런 설교에 상처를 받고 떠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설교자인 목사는 마지막 말하는 마음으로 설교하고, 상담에 임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모와 동생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15세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에 탔을 때 기차 안에서 동생이 신발을 잃어버린 것 알게 되었다. 누나는 신발을 잃어버린 동생에게 화를 버럭 냈다.

“왜 그런 것 하나 변변하게 챙기지 못하니?”

그녀는 그것이 동생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불행히도 동생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오면서 결심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이 마지막 말이라는 마음으로 하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

그녀는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인 벤저민 잰더가 그의 강연에서 들려준 일화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살아가자는 결심,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도해볼 만한 가치 있는 결심이라고 벤저민 젠더는 말했다. 목사인 나 역시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의 목회연정을 되돌아보게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한국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오빠가 여동생을 야단친다. “우리가 지금 소풍 가는 줄 알아? 내 손 꼭 붙들어!” 그 말이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상대방에게 하는 내 말이 생에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른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너의 실수를 이해한다고,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용서한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이런 얘기들을 하지 않을까?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말을 한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평생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했다. 말에 온도가 있다면 나의 말은 몇 도나 될까? 혹시 누군가를 얼어붙게 하는 온도는 아니었을까?

“말은 불과 같다.”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격언 중에 “말이 몸을 따뜻하게도 해주지만 화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말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다. 내 말이 상대의 가슴에 가서 꽃이 되는지 칼이 되는지 잘 헤아리며 말을 건네자.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내가 던진 말이 상대에게 저주가, 상처가 되지나 않나 생각해 보자.

새세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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