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14세기 유럽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빠뜨린 흑사병(페스트). 유럽 인구의 약 1/3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이때 수많은 농노들이 사망하자 경작을 못하게 된 영주들은 돈을 주고 일꾼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농노들은 임금노동자가 되면서 자기 소유의 재산을 축적하게 되고, 사유재산의 축적은 자연히 자유인의 신분을 얻게 했다. 농노의 기반 위에서 유지되던 유럽의 봉건제도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무너진 것이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인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던 대항해시대.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마야문명, 잉카문명, 아즈텍문명 등 웅장한 문화유산들이 증명하듯 강력한 중앙집권과 용맹스런 전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총과 대포와 철갑옷으로 무장한 185명의 병사와 37필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유럽인(스페인)에게는 강력하고 치명적인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천연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천연두는 치명적이었다. 무려 95%의 인디언 원주민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신대륙에서 전염병으로 노동력이 사라지자 유럽인들은 노예무역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 광산, 농장 등에 팔고, 신대륙에서 생산한 설탕, 금, 은 등을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돈을 벌었다. 천연두가 유럽은 부강케 한 대가로 자위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흑인들은 이후 수백 년 동안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신대륙 아메리카는 문명 자체가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정도 눈여겨볼만하다. 모압왕은 어떻게든 메뚜기 떼처럼 밀려드는 출애굽 무리를 막아내야 했다. 주술사 발람을 시켜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되자 모압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꺼내게 된다. 이스라엘 장정들을 바알브올의 축제에 초대하는 계략이다. 결과는 대성공.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장정들은 바알브올의 초대가 마치 천국의 초대와도 같았다. 기름진 음식과 걸죽한 술, 광란에 가까운 춤에 여인들까지 품게 했으니 어찌 안 그러겠는가. 결과는 참혹했다. 바알브올의 초대에 신이 났던 이스라엘 장정들에게 괴질이 번진 것이다. 민수기는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다]”(민 25:9)고 전한다. 염병을 생화학 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지구촌에 번지는 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공포 수준이다. 하지만 전염병 자체보다 더 고약한 것은 공포와 혐오의 확산이다. 어떻게든 전염병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혐오에 져서는 안 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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