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지금 사회에는 나라와 인종 삶의 방식을 초월하여 코로나19라는 동일한 질병에 감염되어 생사기로에 놓인 확진 자가 일백만 명이 넘었다. 그중 기저 병을 앓고 있는 자중에 사망자가 5%를 넘는 나라도 있다. 코로나19는 나이 많고 적음에 차이를 두지 않고 전 연령의 생명을 유린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의 병과 기독교인들의 신앙과의 관계는 성경에 계시된 예수그리스도와 병자들과의 만남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각종 환자들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능력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에 대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하시면서 병자들의 믿음을 확인하셨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모여 든 각색 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한마디면 고침 받을 수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병 고침의 기적은 비록 이천년의 역사가 진행 되었어도 지금 현장에서 이루어진 일처럼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현상의 코로나19가 기적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 신앙의 힘을 조롱 하듯이 세계로 확산되는 중이다. 세계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라 중에 가장 신앙, 경제, 군사적 힘을 앞세운 나라는 미국이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의 통계 중 코로나19의 확진 자가 육십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5%를 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나라에 왜 전염병이 더 확산되고 사망자가 더 많이 나오는가에 대한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 답변이 구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성경에 계시된 병자에 대한 치유의 기록이 화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오늘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병마는 당연히 물러가야 한다. 구약 출애굽기에 기록된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 양이나 염소 하나를 취하여 피를 집 문 좌우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리라는 확신이다. 백성들은 그대로 순종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를 죽게 한 죽음의 사자가 피를 칠한 백성들의 집은 넘어 갔다. 백성들은 죽음의 재앙에서 살아남아 출애굽 한 기록 또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왜 현대 교회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왜 교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전전긍긍 하는 꼴을 보여야 하는가? 이러한 모습을 보는 세상 정치 권력가들의 눈엔 기독교도 세상의 잡다한 신을 섬기는 섹트로 보아 함부로 교회에 집회 금지를 명령하고 집회 시 단죄를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닌가는 의아심을 버릴 수 없다. 신종 죽음의 사자인 코로나19가 왜 교회를 집어삼키려고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지도 의문스러운 일이다. 교회가 왜 병마에 속수무책이며 예배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야 하는지도 의문스럽다. 그리고 유구한 신앙의 역사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교회를 가리켜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왜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이 코로나19를 못 이기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머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가지의 병을 치유하신 능력과 출애굽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갔던 어인양의 피로 세운 교회이기에 당연히 21세기의 죽음의 사자인 코로나19도 교회를 넘보지 말아야 함이 정답이다. 그런데 왜 교회가 그러한 잡다한 병마에 휘둘리고 있는지 교회지도자들과 신자들은 교회를 이룬 자신들의 신앙과 믿음을 돌아보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코로나19 현상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처에 대해 하나님 앞과 역사적 순교자들과 선조들의 믿음과 신앙 앞에 사죄함이 마땅하다. 순도 100%의 진리를 물려주었는데 오늘 교회는 과연 예수님 당시부터 이천년의 세월을 내려오면서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오는 동안 신앙의 순전도가 얼마나 훼손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현대 교회는 왜 코로나19에 대해 연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현대 교회는 본래 신앙의 순전도가 낡아 버렸는지에 대한 원인이 바로 현세 기독교회의 자체 내에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회가 너무 세속적으로 변질 되어버렸다. 초대교회의 본질을 찾기 어렵다. 교회도 세상과 같은 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의 기업이나 교회가 다 같은 의식으로 성장의 잣대를 가진 것이 원인이다. 교회의 외형 건물은 부를 상징한다. 교회는 본래 부를 축척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부활 절기를 맞아 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교회가 현대시대에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해답 안에 코로나19 대처 해법도 있지 않을까?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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