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오늘 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절망적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겸손하고 준비된 대통령과 의료진, 성숙한 백성이 있어 ‘코로나19’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다. 확진자 1만명을 넘긴 대한민국은 이제 10명 이하 한자리수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자가 240만명을 넘었다. 미국은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만 79만명에 이른다. 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세계의 지도자들은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자가 정점을 찍고 감소 할 것이라고 희망석인 말을 내놓는다. 그렇다 우리는 절망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세계민족에게 드리워진 ‘고로나19’바이러스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으로만 극복 할 수 있다. 오늘 세계는 특히 유럽과 미국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몰각한 결과, ‘코로나19’바이러스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삼석의 동시 <그냥>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사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만 내가 왜 좋아?” 엄마는 대답한다. “그냥···” 엄마도 아이에게 묻는다. “넌 왜 엄마가 좋아” 이번에는 아이가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사랑은 ‘그냥’ 좋다. “함께하라”, “함께 있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 하겠다 하니/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한복음 20장 1-8절)

부활의 첫 목격자는 여인들이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시몬의 어머니 마리아, 샤노멜이 그들이다. 베드로는 새벽에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3번 부인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처음부터 지켜보았고, 부활의 첫 목격자였다. 이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냥 사랑했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사랑이며, 조건 없는 사랑이다. 죽은 자는 아무렇게 버리지를 않는다. 정성을 다해서 장례를 치른다.

오늘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을 아무렇게 버리는 전진국의 모습은 보면서, 참담하기 그지없다. 참된 사랑이 결여된 결과이다. 참된 사랑은 죽음도 삶의 일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의 인격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철저하게 이용했다.

오늘 세계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만들어 냈다. ‘의료’를 생명과 관계없는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의료를 돈벌이에 가치를 두고, 철저하게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유럽과 미국은 ‘코로나19’바이러스라는 재앙을 불러 들였다. 미국은 의료시스템을 민영화시켜 돈벌이수단으로 이용하고, 유럽은 국영화시켜 의료인들이 ‘코로나19’재앙 속에서도 일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유럽과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대한민국만 못해서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왔겠는가. 이런 와중에 미국은 대한민국을 향해 방위비를 많이 내라고 겁박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결핍돼 일어나는 재앙이다. 분명한 것은 참된 사랑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긴다는 것이다. 부활의 삶은 사랑이다. 부활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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