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고, 사망의 원인이 되는 그 죄의 원인은 욕심(약 1:15)이라고 말씀한다.

욕심에는 두 종류의 욕심이 있다. 버려야하는 욕심과 버려서는 안 되는 욕심이 그것이다. 버려야 하는 욕심은 죄와 세상에 대한 욕심이고, 버려서는 안 되는 욕심은 의와 하나님에 대한 욕심이다. 죄와 세상에 대한 욕심의 결국은 사망이다.(약 1:15) 그러나 의와 하나님께 대한 욕심의 결국은 천국이다.

이 두 욕심은 서로 공존할 수 없다.

죄와 세상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 의와 하나님께 대한 욕심이 사라지고, 의와 하나님께 대한 욕심을 가지면 죄와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의와 하나님께 대해서는 욕심이 없고, 죄와 세상에 대해서는 욕심에 욕심을 더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와 의에 대한 관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오히려 세상 사람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누릴까만 관심과 욕심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아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누리는 세상적인 것들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누릴 것에 대한 욕심으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죄를 짓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사망의 삶을 사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성경은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과 나무와 질그릇이 있다고 하시고, 그 네 그릇을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으로 다시 분류하신다.(딤후 2:20)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과 금 그릇과 은그릇 그리고 나무그릇과 질그릇을 자연스럽게 금과 은그릇은 귀한 그릇이고, 나무와 질그릇은 천한 그릇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우리들의 귀천(貴賤)에 대한 판단 기준이 돈(財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중히 여기기에 비싼 것이 귀하고, 값이 싸면 천하게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한 그릇이 되기 위해 죽어라고 돈 버는 일에 열심 한다. 사람도 돈이 많으면 귀한 사람이 되고, 돈이 없으면 비천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한다.

귀천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과 이해가 우리와 전혀 다르시다. 하나님의 귀천에 대한 판단 기준은 돈이 아니라 깨끗함이고, 그 깨끗함의 목적은 쓰심에 있다.

주님은 값진 금 그릇을 귀한 그릇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깨끗하여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그릇을 귀한 그릇이라고 하신다.(딤후 2:21)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그릇은 천한 그릇이다. 사람보기에 그리 비싸지 않은 나무와 질그릇이라도 하나님이 쓰시면 귀한 그릇이고, 사람보기에 비싼 금과 은그릇이어도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면 천한 그릇이다.

전정 그리스도인이면 우리 욕심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깨끗함에 있음이 옳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욕심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데 있지 않고, 금과 은그릇 같은 존재가 되는 데에 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음에는 별반 욕심과 관심 없음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다.

교회의 직분 자들을 세울 때 크고 심각한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 교회의 직분을 세상적인 계급으로 이해하고, 그 직분을 욕심내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 욕심이 지나쳐서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쟁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목사와 장로는 금 그릇, 안수집사와 권사는 은그릇, 서리집사는 나무그릇 일반 신자들은 질그릇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참 많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 안수집사와 권사는 귀한 그릇으로 이해하고, 서리집사와 일반신도들은 천한 그릇으로 이해하여 교회 안에서 그 그릇과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그 같은 경쟁심을 은근히 유발시켜 충성경쟁을 하게 하기도 한다. 그 같은 충성경쟁으로 한국교회가 많은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하고, 바른 성장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성공한듯하나 성경적 가치와 기준으로 바르게 성숙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한국교회의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직분을 계급과 명예로 이해하고, 욕심을 부리고 경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자기가 존재론적으로 금 그릇과 은그릇과 같은 사람이 되는가에만 관심이다.

금 그릇이 되느냐 은그릇이 되느냐에 대한 욕심과 관심이 아니라 깨끗하고 헌신된 그릇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는데 관심과 거룩한 욕심을 가져야 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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