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작금엔 ‘코로나19’로 인하여 TV와 매우 가까워지다보니, 2020년 4월 25일 세계여행에 대한 특징 정보 등을 시청하게 되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뿌라비다”라는 인사말이 있다고 한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뿌라비다” 하나면 다 통한다. 누구를 만나든, 어느 장소, 어느 시간, 무슨 일에서든, 어떤 상황이든, 고마울 때나, 슬플 때나, 위로할 때나, 헤어질 때 등도 다양하게 활용되는 인사말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안녕(安寧)” 이란 인사말이 있지 않은가?

“안녕(安寧)”을 국어사전적으로는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아무 탈 없이 편안함.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 평안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이 외에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평안하십니까? 평안하셨습니까?” 등 다양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안녕”하면 왠지 세련되지 못한 인사말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외래어로 인사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상업용 간판에서도 “안녕”이란 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마감할 때에 “안녕”하고 마무리하고 있다. 왠지 어색하거나, 쑥스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관심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방송을 시작할 때에도 “안녕”하고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녕(安寧)”이란 모든 대상에게 인사말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 인사말에 정감을 갖거나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한민국의 언어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라고 자랑하면서도, 자존감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사대주의‘(事大主義.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기고 그에 의지하여 자기 나라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입장이나 태도)라는 말이 회자 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안녕(安寧)”이란 아름다운 인사말이 있음에도 궂어 외국어로 인사말을 건네야만 멋쟁이같이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어의 경우 “안녕”을 볼 것 같으면 Hi, weal(복리, 번영, 행복, 부, 국가, 안녕) well-being(안녕, 평안, 복리)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bu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녕”하면 그 함의는 영어보다도, 프랑스의 “봉쥬르” 보다도 더욱 포괄적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영어 등 외국어로 인사하면 멋이 있고, 우리 언어를 인사하면 수준 낮은 인사말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생각해본다. “뿌라비다” 와 유사하게 활용된다고나 할까, ’코로나 19‘로 답답고, 힘들어하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께 “안녕(安寧)” 이라하며, 성경의 인사말 새겨보자.

성경은 평안(平安)[영]Peace [샬롬 !wOlv;(shalom)], 아람어 명사 [셸람 !l;v](shelam)], 헬라어 명사 [에이레네 eijrhnh(eirene)]의 역어로서, [평화], 또는 [안녕]으로도 역 되어 있다. 이 말의 기본개념은 원만, 건전, 안녕 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행복한 존재 상황이 상정되어 있다.(출처 : 기독교 대백과 사전) 그래서 필자는 성도(聖徒) 간에 주고받는 인사말을 “샬롬 !wOlv;(shalom)” 보다는 “에이레네 eijrhnh(eirene)”를 주로 나눈다. 한다.

(2) ~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聖徒)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2-3)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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