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전 세계에 대 유행한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크게 변화될 것으로 예측하며 아마 코로나19가 끝이 오더라도 세계의 질서는 변화가 있으리라는 예견을 각국은 조심스럽게 내 놓고 있다. 또한 팬데믹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사회의 어떤 조건, 국가의 빈부의 차이도 , 인종 차별도, 종교 차별도 없이 모두에게 감염되게 했으며 감염에 대한 지형이나 지도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글자 그대로 대유행(팬데믹)이었다. 벌써 정치적으로 코로나19의 진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책임소재를 짚고 넘어가겠다는 국제적인 여론이 팽배하다. G2라는 두 개의 초강대국은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려 하고 있으며 서구도 이를 거들고 나섰다. 어떤 결론이 날지 두고 볼 일이다.

무역도, 하늘 길도, 인적 교류도, 기술 교류도, 자본 시장도, 국가 간의 외교도 팬데믹 이후에 그 질서가 크게 달라질 것을 염려 되는 현상이다. 감염 병이 나라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 대유행에 오히려 강대국들이 속수무책으로 크게 당황하여 사망자의 수치가 높아 사체 처리에 곤욕 치르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 되다 시피 했다. 그동안 국제질서는 사상과 이념, 경제의 대소, 군사적 강약으로 무기의 첨단화에 대해 서로 정보의 장벽을 쌓아 감추고 있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원인규명과 발원지에 대한 규명도 국제적인 논쟁거리로 뜨겁게 달군다.

미국의 사망자 수가 베트남 전쟁 때의 전사자 수를 넘어섰다는 보도는 앞으로 전 세계가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공동 대처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함이 시급한 실정이다. 여기에는 나라의 자존심, 경제력, 군사력, 사상 이념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국민들의 생존과 건강을 위해 국제적인 정보교환이 매우 필요한 시기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대처하는 방법이 자국의 방법보다도 앞선다면 나라의 체면을 뒤로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여 국민들의 생명 보전에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야한다. 그런데 국제적인 협력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번 팬데믹 현상으로 종교가 무력함을 보여주었고 오히려 신흥종교로 인해 기존 종교도 함께 불신임을 받거나 종교의 가치에 무용론을 들로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국가는 감염 병으로 인해 무슨 방법으로 감염을 막을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데 종교계는 엉뚱하게 국가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은 모양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감염 병의 확산에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높이 단 신흥 종교 세력이 신앙인 정도를 버리고 세속적인 생각으로 책임회피와 감추는 모습에 종교의 위상이 실추 되었다. 신천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기존 기독교가 치명타를 입는 중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사회에서는 그래도 기독교하면 정직, 성실, 봉사, 사랑으로 생각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 중 십자가를 건물에 단 신천지로 인해 기독교의 신뢰성이 추락했다.

백번을 이야기해도 한국 교회는 종교 사회의 이단 출현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 책임감을 통감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통 교회가 지향하는 비 신앙적인 태도가 이단 출현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성장과 부흥이라고 자위하는 대표적 사례가 고급화된 교회건물이다.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교회 건물이 이단의 야망을 가진 자들에게 표본으로 보여 졌다. 기성 교회보다 한 수 더 떠 기성 교인들이 평소 교회를 향한 비판과 불만에 대해 토로하게 한다. 그런 다음 세밀하게 계획된 교묘한 성경의 교리로 속여 미혹한 다음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

신흥교회의 신자들의 구십프로 이상이 기존 교회 신자들이라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각성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강단의 외침에 식상한 신자들에게 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보니 차라리 신비적으로 종말론을 희석한 성경 해석에 대해 오히려 반기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교회는 교회의 운영 방침에 일대 혁신을 단행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처럼 이윤 추구 한다는 상식 밖의 생각이 사회인들이 가진 교회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도 지울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과 세상의 재물과 겸하여 섬기는 일에서 탈출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교회는 아마도 십년은 더 후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예배에 대한 새로운 발상인 온라인 예배, 드라이빙 스루 예배, 방송 예배, 등등으로 꼭 교회에 모여야만이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전처럼 성수주일이라는 단어가 좀 빛을 잃지나 앓을까 하는 걱정이다. 줄어든 신자들로 인해 예배의 정상화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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