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을 자랑하지 않고, 있는 것과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되기를 애쓰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이 바르고 옳다.

금과 은을 귀히 보고 나무와 흙을 천히 보는 것은 세상적 가치기준이다. 나무와 질그릇으로 쓰이는 것이 싫어서 그것을 사양하고 피할 때, 하나님이 나무와 질그릇에 담고 싶어 하시는 것을 느끼고, 자신을 나무와 질그릇으로 드려 하나님이 마음껏 쓰시도록 드림이 옳고 바른 신앙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으로 귀하다.

금 그릇이 중(重)하다. 그리고 필요하다. 큰 집인 하나님의 집에는 금 그릇도 필요하고, 은그릇도 필요하다. 따라서 금 그릇과 은그릇을 부정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모두 금 그릇, 은그릇일수는 없다. 금 그릇과 은그릇이 아니면 실패한 것인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금 그릇과 은그릇 같은 사람이 되라고 도전하는 것은 금 그릇과 은그릇에 담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사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금 그릇과 은그릇이 되는 것을 그릇된 욕심으로만 치부하고, 무조건 그것을 버려서 다 나무와 질그릇이 되게 한다면 큰 집에는 금 그릇도 있어야 하고, 은그릇도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결과는 필연이다.

하나님의 집과 그 집의 사역을 위해서는 금 그릇, 은그릇도 필요하고, 나무와 질그릇도 필요하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필요하고, 권사도, 서리집사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장로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다 집사와 권사가 될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은 장로님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권사와 집사님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같은 직분에 뽑힐 것이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뽑히지 못할 것이다.

바라는 직분에 선택받지 못할 때 시험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직분에 뽑히지 못해도 전혀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뽑히지 못했다고 시험에 드는 사람은 직분을 인간적인 명예와 계급으로 이해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일 수 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두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나 시험에 들지 않는다고 다 좋고 훌륭한 것은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직분 맡음에 시험 들지 않을 것이다. 아주 일부는 믿음이 좋아서이지만 대부분은 교회와 하나님께 대해 별로 관심과 욕심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교회에 당장 눈에 띄는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저들 자체가 이미 교회의 큰 문제꺼리다.

한국교회의 적지 않은 문제가 여기서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금 그릇과 은그릇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도 문제이고,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문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관심과 욕심으로 금과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에 관심이 아니라 어떤 그릇이든지 하나님이 쓰심에 쓰임 받으면 그것을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귀히 여기신다. 그리고 실제로 그 같은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교회에 진정 필요한 사람은 이 같은 귀한 사람이다.

나의 관심과 욕심은 금 그릇과 은그릇이 되는데 있는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데 있는가. 나는 무엇이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하는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귀한 그릇이다. 사람의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 소유가치가 높은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가 높은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가치로 따지고 평가한다. 금 그릇이 되고 은그릇이 되는 것을 욕심내는 것도 바로 그 같은 마음 때문이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가치로 따진다. 존재가치는 존재목적대로 쓰임 받을 때에만 발생한다. 우리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있다.

우리 중에 금 그릇 같은 사람들이 많으나 대부분은 귀한 그릇이 아닐 수 있다. 금 그릇인 것을 자랑하고 즐길 뿐, 그 그릇으로 하나님을 담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쓰이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나무나 질그릇 같은 사람들도 많으나 대부분 귀한 그릇이 아닐 수 있다. 나의 관심 또한 하나님께 쓰임 받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과 은과 나무와 질그릇을 불문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면 귀한 그릇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