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창세기가 모두 50장인데 그 가운데 야곱의 이야기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다. ‘주식을 알면 돈이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야곱을 알면 인생이 보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야곱은 특별한 인간이기보다 보통 인간이다. 보통 인간인데 좀 억척스런 인간이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서바이벌게임(survival game)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라고 할까?

절대권력인 장자권 탈취를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에서를 속인 야곱.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20여 년을 머슴살이를 하면서 한결같이 ‘귀향’을 꿈꾼 야곱이다. 마침내 귀향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 날 에서와의 원수관계가 그의 귀향길을 가로막았다. 어떻게든 원수관계를 풀어야 했다. 벼라 별 궁리를 다 짜보지만 해답을 얻지 못하고 야곱은 얍복강 가에 홀로 남는다. 예전처럼 어려울 때 도와줄 어머니도 없다. 위로해줄 처자식도 없다. 오직 홀로 자신이 지은 죄와 원수관계를 해결해야 했다.

설화자는 야곱이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했다고 한다. 주석가들은 천사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 놓고 있다. 제3의 존재라기보다 야곱 자신의 내적인 존재 즉 죄로 인해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자기 안의 존재로 보는 이도 있다. 어쨌든 그는 환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사투하며 지난날 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마침내 천사를 이기는 자가 된다. 자기 안의 죄를 이기는 자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간사한 자’, ‘움켜쥐는 자’인 야곱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결한 뜻을 지닌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인생이다.

설화자는 이 장면을 감격스럽게 전하고 있다. 브니엘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야곱, 부도덕한 인간에게 내린 하나님의 은총의 햇살이 야곱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창 32:31). 비록 부러진 환도뼈로 인해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그의 영혼은 세상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어 있다. 원수 에서가 달라진 게 아니다. 야곱이 달라진 것이다. 내게도 그런 은총이 임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