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경을 각색하는 역사적 비평주의

▲ 김재성 목사
그러나 기독교만 유일한 진리종교요, 예수님만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종교들을 진리와 구원의 길에 함께 가는 동반자로 생각하고 협력해야 한다면 이는 심각한 정통신앙의 왜곡이다. 일찍이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 칼 라너 (Karl Lahner), 죤 힉 (John Hick), 콥 (John Cobb) 등이 다원주의가 확산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종교 포용적 다원주의자들이자 보편구원론의 주창자들이다.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의 한 교수는 “불교의 부처 없이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책도 출판했는데, 자신이 믿고 있는 로마 가톨릭과 불교의 상호일치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종교다원주의자들로는 유영모, 함석헌, 변선환, 길희성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한결같이 동양사상과 기독교와의 혼합을 시도하였다. 현각 (폴 뮨젠)이라는 이름을 화계사 숭산의 제자로 받았다는 한 하바드 신학대학원 졸업생에게서 우리는 확산되어나가는 전환시대의 종교다원주의를 목격하게 된다.

정통 개신교 교회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교리를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의 분열을 꾀하는 것이며, 타 종교와의 평화를 해치는 것인가? 정작 그렇게 믿어온 교회의 신앙고백을 변경시키면서 분열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연합을 하고 있는가.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끼리 모여서 서로 연합한다고 자화자찬하는 자들이 아닌가. 현대 교회의 분열은 누가 획책하는 것인가? 정통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신학이론으로만 매달리는 자들에게 물어야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그동안 교회가 가르쳐온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동정녀 탄생,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재림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면, 과연 예수님의 사랑, 은혜, 평화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둘 다 동시에 믿고 받아야만 한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치심을 동시에 믿어야만 한다. 그분이 가지고 살았던 것과 주셨던 말씀을 우리가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

7. 종교개혁자들의 기독론

기독교 교회가 믿어온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에 따르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7). 요한복음 1장에 강조되었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의 현현이요, 로고스 즉 말씀이 육신으로 변화한 예수님이다. 물론, 4세기에서 5세기까지 신학적인 혼란을 극복하면서 정통신앙으로 자리를 잡게 되어졌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물려받은 성경과 각 지방 교회에서 믿어온 교훈들이 서로 일치하는 믿음을 문서로 정비하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독론은 항상 마리아의 품안에 있는 어린 아기를 보는 시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관점을 뒤엎는 충격적인 기독론이 바로 루터의 십자가 신앙이었다. 항상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던 아기 예수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대속적 사역을 회복시켰다. 종교개혁자들의 기본 신앙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은 잊혀진 기독론의 회복이었다.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예수, 피흘려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즉 대속적 기독론이야말로 루터와 칼빈이 강조하던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응집시킨 말이다. 사망 권세를 이기는 승리자 예수님은 친히 피를 흘리신 어린 양이시다. 그래서 단순히 당시 하층시민들, 사회 밑바닥 사람들까지 만나고 가르친 위대한 선생의 경지를 넘어서서, 만유의 주가 되셨고, 콘스탄틴 대왕보다 위대한 군주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셨다. 그가 낮아지셔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므로, 도리어 하나님이 그를 높이 드신 것이다.

기독론의 혼란과 변질이 극도에 달하고 있는 이 땅에, 성탄절이나 고난절이나 부활절이나 모두 항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가 내던져버린 복음서에서는 한국 교회가 붙잡아야할 기독교의 기본진리, 초대교회로부터 받은 참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담겨있다. 교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기독론의 혼돈에서 어서 속히 벗어나서 순수한 신앙이 회복되어야만 한다.

종교개혁의 신학을 종합한 요한 칼빈은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에 대해서 초대 교부들의 글을 요약하여 가장 체계적인 기초를 제공하였다. 칼빈은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무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최초로 정리하였다.

첫째, 칼빈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오묘한 조화로움, 특히 초월적인 신성의 탁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루터파 신학자들이 반박하면서 ‘초월성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extra cavinisticum)라고 평가한 바 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비록 영원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품에 있을 지라도, 그의 신성은 우주에 가득하다고 강조하였다. 교부들의 글을 연구하였던 칼빈은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을 품을 수 없다” (finitum non capax infiniti)라고 주장했다. 칼빈은 인성에서 신성으로, 혹은 신성에서 인성으로 “속성들 간의 교류” (communicatio idiomatum)”라는 개념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기초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지불한 대속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온전한 순종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인간이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여 받게 된 저주에서 해방된다. “스스로 하나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존하라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지를 비춰주는 거울을 본다.

<다음호에 계속>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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