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1장 한국교회의 뿌리(1):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

한반도에 기독교 신앙이 전해진 후로 정치와 사회, 경제와 교육, 의학과 사회사업 등 각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발휘하였다. 한국 교회가 더 든든히 세워지고, 더 큰 빛을 비춰주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차분히 기초를 다져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뿌리를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과연 어떤 분들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복음을 물려주었던가를 되새겨 보면서,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갖추고자 노력하여야 할 때이다.

한반도에 복음이 첫 뿌리를 내리게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가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 들어온 복음은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침략이 착착 진행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굴곡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고, 간악한 침탈 앞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려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에, 기독교의 복음은 희망의 소식이었고 신선한 샘물이었다. 나라를 되찾는다는 소망과 더 나은 삶을 향한 애원이 사무쳐서 울부짖는 기도로 터져나왔고, 하늘에 사무치는 간절함에 대한 응답으로 해방과 건국, 그리고 번영과 최강 무역국이라는 엄청난 축복이 눈송이처럼 한반도에 내려졌다.

필자는 외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서 복음을 물려받았다. 신실한 믿음으로 자녀들을 교육하여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주고자 노심초사했던 조상들의 신앙은 그 앞서서 살았던 분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필자의 아내는 일제 하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일본 유학을 다녀오신 후 한국에서 목사가 되신 할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4대에 걸쳐서 목회자로 헌신한 분들이 많다. 초기 선교사들을 만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후손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조선 말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여러 방향에서 외국의 문물을 접하였다. 북방 문명의 지배자였던 청나라와 러시아 쪽에서 들어오는 군사 지배력과 호시탐탐 정복을 노리고 있던 일본을 통해서 전해지는 외세의 야욕이 한반도에 밀려들어왔을 무렵에, 복음의 전령사로서 선교사들이 찾아들어 왔다. 특히 최초의 한국인 교회를 설립한 서상륜과 그의 동료들은 만주 지방 고려문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온 로스와 맥킨타이어 선교사들을 만나서 기독교 신앙을 영접하였다. 일본에 건너가게 된 이수정은 그곳에 파견되어 있던 미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여러 선교사들에게 한국으로 가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에 복음이 전달되도록 진행된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가장 중추적인 도구로 쓰임을 받은 전문인 선교사 알렌의 놀라운 사역이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한반도 주변에 북쪽에서, 바다 건너 중국과 일본 등 각 지역들에서 여러 사람들이 선교사들과 접촉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과 모임에서 복음을 영접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선교의 개척기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분은 알렌이었다.

1. 한국 선교의 최초 개척자, 알렌의 의료선교

한국 땅에서 복음의 활발한 전파와 교회설립의 문호를 개방하도록 국가 전체에 영향을 끼친 분은 최초의 내한 주재 선교사로서 활약한 의료선교사 알렌이다. 그는 1884년 9월 20일에 인천 항구에 도착했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뿌리를 추적하고자 한다면 먼저 알렌 선교사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해야만 마땅하다. 알렌의 놀라운 성취와 신임에 근거하여 고종 임금은 문호를 개방했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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