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용 목사.

여기 서있는 나, 당신의 친구 희용이는, 그대가 이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지금, 허전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너의 이름, 박 용! 을 불러본다.

우리는 생전, 만나면 사사로운 자리에서 이렇게 서로를 불렀지? 용아! 그리고 희용아! 이렇게 편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친구의 관계로 말이다.

그대 만나면 항상 했던 말, ‘이제 남은 인생, 자주만나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아주 재미있게 살자?’ 그러더니, 도대체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벌써 가실 때가 되었었나? 아직 우리는 황혼이 아니라고 믿고 살았는데...........
이제, 그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었구나.

박 목사! 아니, 친구 용이야! 지금 당신은 어디에 계신가? 하늘나라 천상에 대하여 그동안 꾸어왔던 꿈들을 이루심에, 너무 좋아서 주님 품에서 감격하고 계신가? 작년 이맘때 떠난 우리 집사람 윤병임 사모는 만나보았는가?

돌아보니 우리만남, 방배동으로부터 오늘까지 춘하추동 40년의 세월이었구나? 참으로 우리가 걸어온 지난 그 세월의 걸음들을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정이었던 것 같구나. 그동안 당신은 우리 모두의 빛나는 별로, 하늘의 큰 별처럼 멋지게 살아 온 동지였다. 그리고 그대는 당신의 간증대로 신앙의 귀족처럼 살아왔고, 선대의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계승한 청출어람(靑出於藍), 위대한 장자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또한, 그대는 우리 개혁의 초석(礎石)으로, 오늘 개혁총회가 존재할 수 있었던 증인으로, 역사에 중심에선 주인공으로 멋지게 살아왔다.

친구 용이! 당신이 떠난 빈자리가 오늘, 이렇게 크게 느껴짐이 웬일일까?

우리 큰 아이 준이가 당신의 급별(急別) 소식 듣고는 이런 표현으로 더욱 나를 아프게 하더구나. ‘아빠, 이 세상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들은 빨리 가고 나쁜 사람들만 남는 것 같다?’ 그래, 당신은 너무나 좋은 친구였어.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항상 친절했어. 그리고 신실했어. 모든 일에 충성스러웠어. 그래서 참으로 더 없이 멋진 친구였고, 그래서 우리는 당신과 함께 함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단다.

그동안 행복했어! 친구야~ 이제 68년 그 거룩한 수고를 그쳤으니, 우리 모두가 당신에게로 돌아 갈 때까지 평안히 안식하시라. 그동안 당신이 뿌렸던 씨앗들, 손수 거두지 못한 것들, 남겨진 기도의 응답들 우리가 풍성히 거두어 가는 그 날까지 부디 잘 계시라, 우리 거기서 모두 함께 다시 만나자.

2020. 7.3
당신의 영원한 친구 최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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