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탁기 목사.

불신이 팽배한 사회다. 지난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오른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주세요’란 글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고인의 아들이 올린 청원 글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상황서 무려 630,672명(7월 10일 오전 10시기준)이 동의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만큼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에서 응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 기사의 행동에 국민적 공분이 크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골든타임만 지켰어도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았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택시 기사의 행동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더욱이 택시 기사 본인이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고 무심코 내뱉은 말처럼, 어떠한 방법으로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런 저런 핑계 보다는 진심어린 사과의 한 마디가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다만 무엇이 그 택시 기사를 그 지경에 몰아넣었을까. 개인적 문제도 있겠지만,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풍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신의 늪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진실은 거짓에 가려버렸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로 넘쳐났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들을 우선 의심부터 하고 본다. 믿음이 깨지니 신뢰가 바닥을 친다.

분명 그 택시 기사는 과거 모 연예인이 행사 장소에 늦지 않기 위해 사설 응급차를 이용한 것을 떠올렸을 터이다. 당시 이 연예인은 마치 환자를 이송하는 긴급한 상황인 것처럼 꾸며,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내달렸고, 결국 약속 장소에는 늦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택시 기사가 다짜고짜 사고처리부터 하고 가라고 으름장을 놨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생명을 담보로 흥정하듯이 가로막는 행위는 잘못된 처사다.

또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생명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소중하다. 뉴스에 보도되는 이 사건의 영상에 따르면 택시 기사는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는 말을 너무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신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남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말인가. 돈으로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를 줄 생각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고귀한 것이다. 하물며 그 주체도 아닌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불신이 팽배한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서로 믿고 의지할 때 비로소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이 사회도 온전히 돌아갈 수 있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신뢰하지 못하면 거대한 대한민국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비단 택시 기사뿐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의심부터하고, 양보하기보다는 내가 먼저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러한 풍조는 계속될 것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국민들끼리 서로 의지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누가 이끌어간단 말인가. 더 이상 불신의 늪이 깊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신뢰회복을 위한 ‘믿음’이 충만해져야 한다. 또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두 번 다시는 불신풍조가 만연한 사회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하루 속히 신뢰가 넘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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