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응환 장로

조선 선조 때, 정승 이항복의 이야기다. 이항복은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 정승 행차는 벽제라 하여 하인들이 앞서서 행인을 정리하는 등 길을 치우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이 벽제에 밀려 길바닥에 넘어졌다. 지금 같으면 이 여인은 고소ㆍ고발로 야단이 났겠지만, 민권의식이 대단했던지 정승의 집까지 뒤 쫓아와 고래고래 입에 못 담을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연인은 “머리 허연 늙은 것이 상놈인지 양반인지 몰라도 종을 풀어 길거리 행패를 부리니 네가 정승이라고 위세를 부리는 거냐, 너의 죄는 귀양을 보내 마땅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마침 사랑채에 와 있던 손님은 정승에게 “누구를 향한 욕설이냐”고 물었다.

정승은 “머리 허연 늙은 것이 내가 아니고 누구겠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님은 깜짝 놀라서 “그렇다면 왜 잡아 족치지 않고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느냐”고 물었다.

정승은 “사소한 일이긴 하나 내가 먼저 잘못한 일이고 사(私)감으로 대하면, 그 누(累)가 백성 모두에게 미치는 법이오. 실컷 욕설을 퍼부어 분을 풀고 가도록 내버려 두는것이오”라고 대답했다.

공인(公人)이기에 사인(私人)으로서의 행동거지가 얼마나 규제받고 구속받는가를 적시해 주는 고사다. 사인으로서 누가 되지 않을 행실이요, 또 누가 되더라도 별스럽지 않게 용납되는 행실이지만, 공인이거나 공인이 되고 나면, 그것이 누가 되고, 또 새삼스럽게 별스러워지며, 용납 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조선 정권사회에서 어느 한 사인이 공인으로 발탁되면, 자신의 누를 고백하고 그 벼슬을 사양하는 것이 법도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세 번까지는 사양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당상관으로 천거가 되면 “제가 어렸을 때 학문을 게을리 했으니 공인으로서 때가 묻었습니다”하는 등으로 벼슬을 사양했던 것이다.

광해군이 젊고 어렸을 때 궁녀들과 숨바꼭질을 즐겨 했다는 것이 조야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구중궁궐 속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어린 세자가 숨바꼭질 했기로서니, 그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광해군이 공인이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사람들은 ‘고린내’를 한국 냄새라 하여 ‘고려취’(高麗臭)라 얕잡아 부르고, 한국 사람들은 ‘노린내’를 오랑캐 냄새라 하여 되 냄새 호취(胡臭)라며, 악취뿐 아니라 야만적 행위를 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오랑캐’라고 불렀다

프랑스 사람들은 형편없는 요리를 ‘영국 요리’라 하고, 영국 사람들은 제멋대로 노는 휴가를 ‘프랑스 휴가’라고 얕잡아 부른다. 허세 부리는 것을 ‘화란의 용기’라 하는가 하면, 뭣인가 잘못됐을 때, 주군에게 인책(引責)하는 뜻에서 배를 가르고, 또 주군을 뒤따라 죽으려고 배를 갈랐는데 이를 ‘일본식 의리 자살’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국인이나, 이민족의 눈에 띄는 행동은 그것이 보편적이 아니요, 공통성이 없더라도 가급적 깎아내리고 얕잡아 보아 그 나라 그 민족을 보는 관점으로 고정하려 한다. 행실이나 도덕률이 지엄했던 우리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자유분방한 미국 사회에서도 공직자의 인준과정에서 과거의 사생활이 문제가 되어 거부를 당하는 등 공인이 되는데 사소한 행실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뜻을 갖는지 절감케 하는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세기총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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