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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유색인과 백인이 함께 실현하는 곳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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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8  1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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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인종주의 역사 청산과 흑인해방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죽임당한 흑인청년의 ‘한의 소리’를 듣고, 흑인해방운동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에집트 파라오 밑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가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우성치는 자의 하나님이며, 이들의 피맺힌 절규에 행동하신다.

흑인해방운동,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해방운동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천지창조 이후 꾸준히 벌여온 인권운동이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죽임이후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개선을 요구하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BLM운동을 넘어서 역사와 종교, 산업,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백인 우월주의 요소와 근본주의의 흔적을 걷어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 이기철 선임기자는 “인종차별 시위 국면에서 또 다시 ‘백인 예수’ 논란이 불거졌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죽임 뒤에는 예수를 백인으로 묘사한 백인 근본주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빌라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죽임당하는 자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백인 우월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의 위세는 누구도 꺾지 못 할 것이다. 그 사이 이들에 의해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소리는 하늘에 사무칠 것이다.

예수는 분명 백인의 예수가 아니다. 고난당하는 인류 모두의 예수이며,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다. 세계 모든 민족의 구원을 소망했다. 오늘 세계는 백인 우월주의자와 근본주의자에 의해서 일어난 전쟁의 고통 속에 있다. 이들은 또 나라도 없애버린다. 성경책을 옆에 끼고 자신만 정의로운 것처럼 포장한다. 영국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백인 예수님’은 없다. 흑인, 중국인, 중동인 등으로 묘사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성부)이, 백인의 하나님이라면, 흑인의 하나님이며, 황색인종의 하나님이다. 인디오의 하나님이다. 또 남한의 하나님이라면, 북한의 하나님이며, 인류 모두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성자)도 마찬가지이다. ‘백인의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대교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아니 자신들이 제도와 이념에 갇혀 예수님을 마음대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백인 우월주의와 근본주의에 매몰된 인간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하나님의 질서를 망가트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성부’, ‘성자’, ‘성령’을 동원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이들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분열과 갈등을 청산하고,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 백인도, 유색인종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와 그를 받아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비서트 후프트는 “가난한 자를 위한 책임을 부정하는 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신앙의 이런저런 항목을 부정하는 것과 똑같이 이단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라는 구조적 인종주의자와 같이 가난한 형제를 돌보지 않는 것 역시 이단이다. 따라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문제로 규정되었다. 즉 인종차별주의자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자는 곧 그리스도의 신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며, 교훈이다. 백인 우월주의와 유대교 이데올로기에 갇힌 백인 근본주의자들은 고난당하는 진정한 이웃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온갖 압력을 받고 있다. 성경책을 옆에 낀 트럼프에게는 이웃이 없다. 힘의 논리로 이웃나라를 괴롭힌다. 이것은 분명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이탈한 행동이며, 하나님나라에 혼자 가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서도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영미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 역시 배타성과 종교성이 강하다. 인간이 만든 교리와 제도, 유대교적인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에 빠져 나만 구원받겠다고 한다. 또한 성령을 내세워 끼리끼리 모여서 싸우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하나님나라는 묘연하기만 하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자기치유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받아드릴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이웃의 고난을 목격 할 수 있는 맑은 눈, 이웃의 아우성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밝은 귀를 가져야 한다. 영미 근본주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드린 한국교회는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과 귀, 눈이 없다는데 안타깝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강대국을 숭상하는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백인과 유색인종이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이웃을 위해 희생 할 줄 안다. 이것이 바로 영적능력이다. 물은 다투지 않고 서로 석여 유유히 흐른다. 차별하지도 않는다. 만물을 소생시킨다. 성령을 마신 사람은 물처럼 변하지 않는다. 유색인종도, 백인도 차별하지 않는다. 서로 화합하고, 사랑한다. 대한민국은 이웃의 생명을 존중할 줄 알며, 차별 없는 나라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나라를 꿈꾸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아니라, 유대교의 이데올로기, 근본주의자들의 제도와 관습, 관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승리이며, 그리스도인의 승리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질서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계만민이 차별 없이 사는 하나님나라를 꿈꿨다. 이것은 요한복음 17장20-26절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만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았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색인종이든, 모든 민족의 구원을 소망하고,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 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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